공대생의사랑이야기

글/그림 : 바다의기억

피아노 위에 태권도 <63화> 토마스

전공의 압박이 심각합니다.

무사히 졸업은 해야할 터인데....


======================== 공대생은 고달프다 ====================



오후 수업이 끝나고 비는 시간 동안

한선생을 통역관 삼아 안선희에게 일을 시킨 나.

아이들과 노는 모습은 위험천만했지만

의외로 잡일은 꼼꼼하게 잘 해냈고

나와 태룡이의 부상 탓에 밀려있던

빨래와 설거지가 말끔히 정리되었다.


“Sir, I finished my work."

“일 다 했데요.”

“음... 그럼 저쪽 가서 다리 찢기 하라 그래요.”

“네, He said.... Wait a moment,
다리 찢기가 영어로 뭐죠?"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알 것 같아요?”


간혹 막히는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훌륭한 통역관이 되어 준 한선생.

역시 사람은 배우고 볼 일이다.


“으음..... He said.... do some flexibility training
hm.... make a straight line by your legs.
You know what I mean?"

"...What? I can't do that."

“못한다는 데요?”

“못하는 게 어딨어, 하는데 까지 하는 거지.”

"He said, Just try, as possible as you can."

“I hate flexibility training..
May I do another one?"

“..... 유연성 훈련은 싫으니까 딴 거 하고 싶다네요.”

“........예? 허어.... 참나.
싫다고 안 하면 그게 훈련이에요?
헤이, 팔로우미.”


영 떨떠름해 보이는 표정의 그를 이끌고

도장으로 나간 나.


“오케이, 이쪽에 발, 이쪽에도 발.”

“I really want to do another....."

“헤이! 컴온!”

“......”


난 예전에 태룡이에게 했던 데로

다리를 넓게 벌리고 앉아

그와 양발을 맞닿게 했다.


“오케이, 이제 스타트 한다.”

“.....Oh, my.....Oh my......"

“.... 헤이, 표정이 왜 그래? 아직 시작도 안 했구만.”

“It's too hurt, master. my legs are killing me."

“뭐? 얘 지금 뭐래는 거야?”

“아프대요.”


이제 고작 90도 조금 넘게 벌려진 그의 다리.

하지만 그의 얼굴은

난생처음 다리를 찢어서

180도 만들기 2도 전까지 간

40대 중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Oh my.....Oh my....."

“자꾸 오마니는 왜 찾아?
자자, 긴장 풀고 조금만 더 찢자.”

“Oh! Jesus!!!"

“...... 찢긴 뭘 찢어, 하나도 안 찢었구만.”


내가 그의 다리를 찢어주는 동안

한선생은 뭐가 그리 우스운지

배를 잡고 도장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 다리 찢는 게 그렇게 웃겨요?”

“아하하, 아뇨, 아니.... 그냥..... 예, 웃겨요, 아하하.....”


이제 110도 쯤 벌어진 그의 다리.

아무래도 그의 치명적인 약점은

유연성의 부재인 것 같다.

어쩐지 상단차기가 영 시원찮더라니.....


“Stop! Please stop!"

“워어 워어, 아프면 두드려, 이렇게.”

“Oh my..... Oh, Oh.....”


이대로 계속 찢으면

곧 거품 물고 넘어갈 것 같은 그의 표정에

난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선희가 계속 오마니를 찾으며

허벅지를 메주먹으로 두드리는 사이

문 바깥쪽에서 묵직한 한 무리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며

깍두기 일당이 들어왔다.


“여어~ 사장님, 안녕하셨어라.”

“어허, 사장님이 뭐냐, 우리 관장님한테.”

“아~맞다. 그 말이 영~ 입에 안 익어 번지네요.
아무튼, 뭐하고 계셨어라?”


설마 설마 했더니 제 시간에 칼 같이 나온데다

어디서 단체복이라도 주문했는지

검은색 디아도라 추리닝에

눈부시게 하얀 운동화를 신고 나타난 그들.

...... 아무리 봐도 평범한 사람들로는 안 보인다.


“다리 찢고 있었습니다.
신발은 신발장에 넣고 들어오세요.”

“어이쿠, 이거 또 깜빡했구만.”

“제가 갖다 놓고 오겠습니다, 성님.”


일당 중 한 명이 신발을 모아 계단 밑으로 사라지고

도장 안으로 들어온 네 사람.

그 중 전부터 말이 많던 막내란 사내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이구, 여긴 양놈도 다니는구마잉...”

“What? I know the word Yang-Nom.
Stop cursing me, you're so rude!”

“에이? 지금 나한테 뭐라 그런 거여?”

“..... 양놈이라고 하지 말래요. 음....무례하다고.”

“아니 그럼 양놈보고 양놈이라고 하지, 뭐라 그러나?”

“Don't call me like that!
I'm 선희, Seon-hee Ahn."

“......니 이름이 선희라고?”

“Yes!"

“양놈이 뭔 선희여, 선희는. 그럼 난 토마스다.”

“....... Tomas? Is that your name?"

“당신 이름이 토마스냐고 묻네요.”

“엥?! 토마스는 무슨, 당연히 농담이지.
쪼크 몰라? 쪼크?”

“토마스라.... 그거 좋구나, 토마스.
넌 앞으로 토마스다.”

“예?! 성님까지 왜그러셔라, 저 막내여요, 막내!”

“...... 니 밑으로 들어론 애가 몇인데
아직까지 막내로 있으려고 하냐.”

“아니, 그래도, 아무려면, 암만 그래도,
토마스는 갑자기 뭔 토마스여요....”


그렇게 순식간에 막내에서 토마스로 바뀌어버린 그.

하지만 아무래도 그는 새로운 이름이 마음에 안 드는지

버럭 선희에게 화를 냈다.


“그걸 지금 찢는다고 찢고 있는 거여?
60먹은 할아버지도 그보다는 많이 찢어지겠네.”

“.....What? What did he said?"

"Hm... He said, Hm..... 뭐라고 해야 하지?
sixty years old man maybe has better flexibility than you, haha!
Could you understand? I mean, he....."

“......Ok, Ok, I got it. He tease me, right?
Hey man, come here.
I'm stiffer than sixty but, not you, OK?"

“......그래도 아저씨 보단 유연할거라네요.”

“뭐시여? 시방, 지금 나하고 싸우자 이거여?
어이, 일어나, 일어나 이 자슥아!”

“어허, 토마스, 네가 먼저 시작해놓고 왜 그러냐.
승부를 낼라믄 유연성으로 내야지.
안 그렇습니까, 관장님.”

“......그렇죠?”


...... 그렇게 시작된 조폭vs아메리칸의 유연성 대결.

잠시 동안 몸을 푼 토마스가

내가 있던 자리를 대신했고

새롭게 각오를 다진 선희는

열심히 허벅지를 두드리고 있었다.


“자자, 제한시간은 없고
먼저 기브업 하는 쪽이 지는 겁니다.
스타트!”

“Wooap!!!"

“워메! 이 놈 봐라!”


선제공격은 이전부터 다리를 찢고 있던 선희가 시작했다.

허벅지를 두드리며 여분을 확보한 그는

무서운 기세로 토마스를 자기 쪽으로 끌어 당기며

단숨에 다리를 10도 가량 더 벌렸다.


“허어.... 토마스, 어째 벌써부터 죽을상이냐.
남자가 큰소리 친 가락이 있지.”

“오우, 성님! 이거이 양놈이라 기럭지가 틀려서
똑같이 벌려도 제가 훨 많이 찢어져부요!”

“Don't call me Yang-nom! Hoopps!!"

“어이쿠! 어이쿠 토마스 죽네!
오냐, 오늘 한 번 같이 죽어보자!!!”


선희의 쉴 새 없는 공격으로

단숨에 수세에 몰렸던 토마스지만

동귀어진의 각오로 선희의 팔을 마주 잡아 당기자

선희의 이마에서도 고통을 참기 위한 핏줄이 일어났다.


“Kuaaaaa!!!! You, you.... son of...... Damn it! Fuck!!

“뭐, 뭐시여? 뻑? 너 지금 나한테 욕했냐?
보시오, 선상님, 야 지금 나한테 욕한 거 맞지라?”

“.....아니, 그 뻑은 욕이 아닌데
다른 욕을 하려다 말았네요.”

“으이? 뭐라고 하려다 말았소?”

“그....뭐라고 해야 하나.... 어머니가 나쁜 분이라고.....”

“이런 천하의 막 배워먹은 새끼가
어디서 할 욕이 없어서 남의 애미 욕을 하고 있어!
야이 쌍놈의..... 아따 씨바 말해도 못 알아 듣지,
선상님! 영어로 욕 좀 가르쳐 주소! 언능!”

“.....어어.... idiot? 바보..... jack ass 멍청이....”

“아따 그런 거 말고, 좀 센 거 없소?
@!^로 @#$하고 #$를 쌈 싸먹을 #%!@새끼 뭐 이런....”

“그....그...... 그런 건...... 제일 센 게 fuck you에요.”

“씨바 그럼 아까 욕한 거 맞구만.
헤이 Fuck you, too다 개새꺄!
이야아아아아아!!!”

“Wha, what the?! Ooooops!! Oh, my, you......
you, 너, 쥬귤래? 씨파놈아?”

"워어?! 너 이 새끼, 죽어! 죽어 이 양놈의 새꺄!“

“Whoooooowaaaaaa~~~!!!!"


그 뒤로 20분이 지났지만

둘의 싸움은 끝날 줄 몰랐고

꾸물꾸물 전진의 전진을 계속한 결과

둘의 다리는 150도에 육박할 만큼 벌어져 있었다.

붉게 달아오르다 못해 온몸의 피가 다 쏠려 있는 것 같은 얼굴,

이마 끝에서 어깨까지 불룩불룩 솟은 혈관,

눈가에 그렁그렁한 눈물....

이미 둘은 각자의 한계를 초월해 있었고

다음이나 다다음 공격이면 확실히 승부가 갈릴 기미였다.


“어이, 인자 포기할 때도 안 되었냐?”

“Nope.”

“그라면 또 확 땡겨버린다?”

“As your wish, if you can~."

“아 나, 이 새끼 아까부터 깐죽깐죽.....”

“Hwooo....here we go! Kuaaaa!"

“아야야야야야야야야!
너 이 새끼! 끼야야아아아아아!!!”


‘빠직?!’

모두가 숨을 죽이고 승부를 지켜보는 가운데

들려오는 기묘한 소리.

그리고 다음 순간

두 사람의 얼굴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일그러졌다.


“아~~아아악!!! 쥐쥐쥐쥐쥐쥐쥐!!!!!!”

“I have a cramp!! Oh Jejus, Oh my....oh.......!
Fucking cramp!"


다리에 난 쥐 때문에 푸들푸들 떨면서도

결코 서로 맞잡은 팔을 놓지 않는 두 사람.

이대로 놔두면 응급실이라도 실려 갈 것 같은 그들의 모습에

난 시합을 중지시킬 수밖에 없었다.


“오케이, 여기까지, 무승부! 무승부!”

“Nope! I'm fine! proceed!"

“아이구, 이거 노시오, 내 저 새끼 완전히 죽여놀랑게!”


나와 곽두기 선수가 두 사람을 떼어놓는 사이에도

초등학생처럼 엉엉 울면서

머리카락을 붙잡고 놓지 않는 그들.

도장 바닥에 눕힌 채

발가락을 몸쪽으로 눌러 쥐를 풀어주는 동안에도

두 사람은 갖은 욕지거리를 하며 서로를 공격했다.


“으허허허허엉.....고 쫌 살살 하소! 아파 죽겠구마능!!”

“...... 됐습니까?”

“아아, 아아아아!! 다시 쥐난다!!!
꽉꽉! 꽉꽉 좀 주물러 보소!!
어이구 나 죽네! 어어어허허허허.....”

“..... 그래도 잘 하셨어요.
오늘 배운 내용은 경쟁과 인내입니다.
토마스씨는 오늘 자신의 한계를 한 번 뛰어 넘은 거예요.”

“후어어어.... 성님, 들으셨소?
저 토마스가 오늘 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었다 하네요.”

“그래, 잘~했다. 담엔 꼭 이겨라.”

“그래야지요, 내 오늘부터 집에 가서
밥 먹고 똥 싸는 거 빼면 다리만 찢을랑게,
담엔 꼭 책임지고 죽여 버릴 것이오.”


지금도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면서

그래도 꿋꿋하게 다음을 기약하는 토마스와

그를 믿음직스럽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곽두기 선수.

이들이 밖에서 정확히 어떤 일을 하고 다니는지는 모르지만

마냥 나쁜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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