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의사랑이야기

글/그림 : 바다의기억

피아노 위에 태권도 <60화> 정면승부

개강후 3주 정도가 됐네요.

벌써부터 방학이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



=========================== 어차피 주4인데 반은 방학이잖아 =========================


결승전의 막이 올랐다.

상대는 나를 한국의 예쁜이 정도로 취급한

변태 아메리칸.

대한민국의 명예를 걸고

이번 경기에서 질 수는 없다.


도장 현관에

‘경기도 대회 고등부·일반부 우승’

플랜카드를 자랑스럽게 내걸 내일을 꿈꾸며

경기장으로 올라선 나.

중량급 결승전에 한미 대항전이라는 볼거리로

관중석은 술렁거렸다.


“청, 홍, 차렷! 경례! 시작!!”


드디어 시작된 경기.

서양 선수들은 유연성이나 근력은 좋은 반면

순발력이나 지구력은 떨어지는 편이다.

이번 상대도 스텝이 묵직한 것이

속도 보다는 타이밍을 중시한 타입이 분명했다.

어디, 맛보기로 한 번 들어가 볼까?


“.....오차아~ 빠셍!”


반박 앞서 페인팅을 주며

얕게 들어간 중단 나래차기.

내 눈치만 살피고 있던 상대는

어렵지 않게 나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반격 시도 같은 건 전혀 없었다.

반응을 못한 걸까?

아니면 좀 더 좋은 기회를 노리는 걸까?


그 뒤로도 몇 번인가 떠보기 공격을 시도했지만

상대가 반격다운 반격을 한 적은 없었다.

적당한 빈틈만 보이면

제대로 한 번 들어가고 싶은데

미국소만 먹고 자란 통뼈라 그런지

어지간한 공격에는 흔들림 없이 버티고 있었다.


1라운드 종료를 20초 남기고

여전히 시합은 0:0 상황.

슬슬 승부수를 던져봐야 하나 고심하고 있을 때

상대가 기합을 지르며 공격해 들어왔다.


“Yap! Yop!"


..... 양놈은 기합 소리도 양놈 같구나.

뭔가 확실히 다른 기합소리에 비해

별 뾰족한 수는 없는 것 같은 상대의 공격.

그의 평이한 중단 차기 두 방을 막아낸 난

바로 반격을 노리고 나래차기를 시도했다.


“차아! 빠셍!”


첫 방은 불발.

하지만 두 번째 발은 상대의 빈 옆구리를 향해

깔끔하게 파고들었다.

바로 그 순간,

왼쪽에서 뭔가 거대한 움직임이 느껴지며

등골을 서늘해졌다.


“OaaaaaaaaaAAAAA!!!"


‘퍼어억!!’

묵직한 타격음.

그 중 반은 내 나래차기가

상대의 호구를 맞추며 난 소리였고

반은 상대의 발차기와 내 왼팔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아니, 아마도 반 이상.....


순간 부러진 게 아닐까 의심될 만큼

격렬한 통증이 팔꿈치에서 올라왔다.

가볍게 쥐고 있던 주먹은

완전히 풀어진 채 부들부들 경련하고 있었다.


뭐였지? 방금 그 돌려차기는?

점수판은 1:0.

분명 내가 점수를 따냈음에도

정신적으로는 점수를 잃은 것 같았다.


“후우....후우....”


난 일단 왼팔을 가볍게 접었다 펴고

주먹에 힘을 줘 보며 통증을 삭였다.

제대로 움직이는 걸로 봐서

뼈에 이상은 없는 것 같다.


내가 팔을 움직여 보는 동안

상대는 아예 경기장 한 쪽에 자리를 잡은 채

먹잇감을 노리는 야수처럼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다시 들어가야 하나?

상대가 먼저 공격할 것처럼 보이진 않는데...


‘삐익-’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1라운드가 끝났다.

뒤돌아 경기장을 내려가며

난 무의식적으로 왼쪽 팔꿈치를 주물렀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뼈가 약해진 건 아니라면

상대의 발차기가 무식하게 세다는 건데....

같은 체급에서 이런 느낌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전 경기 기권승은 이 발차기 덕분일까?


“.... 팔 괜찮으세요?”

“..... 아직은 괜찮은 것 같은데
몇 대 더 맞으면 어떨지 모르겠네요.
완전 망아지 뒷다리에 채인 것 같은데....”

“음....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일단 점수로 앞섰으니 몸을 사리는 쪽으로?”

“그럴 수야 없죠.
예쁜이의 매운 맛을 보여주기로 했으니
정면승부로 본때를 보여줄 겁니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난 6:0 상황에서도 적극적 시합을 펼쳤던

초고속 선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그 준족과 판단력을 가지고

점수를 보전한 채 도망 다니길 택했다면

한 방 역전패 같은 건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의 정신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난 절대 물러설 수 없다.


2라운드.

난 시작부터 독한 마음을 먹고

상대의 팔꿈치를 향해 강타를 날렸다.


“오아아아아차아아!”

‘빠악!’


뼈와 뼈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울리며

별 준비 없이 발차기를 막은

상대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껏 살면서 힘으로 밀려본 적 없는 나였다.

뼈도 제대로 된 통뼈라

군대스리가에서 발목 한 번 다쳐본 적 없었다.

미국 소고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도

지금 속으로 눈물 꽤나 흘리고 있을 것이다.


일단 정신적 데미지는 갚아줬다고 생각한 난

잠시 주변을 돌며 그의 분위기를 살폈지만

딱히 공격해 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오냐, 안 오면 한 방 더 간다!


“스읍..... 빠세에엥!!!!!!”

‘뻑!!’

“!!”


점수와는 무관하게

단지 위력을 과시하는 공격.

같은 자리에 두 번째 공격을 당한 그는

확실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반격에 나섰다.


“AdahaAA!!!!"

'뻐억!‘

“와차아앗!!”

‘빠악!’


그가 공격해오면

바로 맞받아치기로 벼르고 있던 난

이를 악물고 또다시 같은 자리를 찼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점수와는 상관없는 오기싸움이 시작되었다.


"Shit....! DaAAAA!!"
‘뻑!’

“뜨아차아!!!”
‘빠아악!’

“Cha!!!"
‘뻐억!’

“쁘아쉐엥!!!”
‘빠악!’


막고, 차고, 막고, 차고...

그 사이 나의 왼팔은 인대나 어딘가가 잘못된 듯

통증과는 다른 기묘한 찌릿함을 전해왔고

오른 발등은 퍼렇게 선 핏줄이 선명히 보였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나보다

상대의 상태가 심각해 보였기에

난 더욱 발차기에 위력을 실어 상대의 공격을 받아쳤다.


2라운드 종료 20초 전.

상대의 자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왼팔을 보호하기 위해 허리를 빼니

다음 차는 발에 체중이 실릴 리 없었고

방어에서 여력을 얻은 난

더욱 더 세차게 오른발을 날렸다.


"으아아아아빠셍!!!“

‘뿌억!’


다음 순간, 발등을 타고

뼈끼리 부딪히는 것과는 다른 소리가 전해졌다.

아마도 관절이 완전히 제 기능을 상실하는 소리.

나보다 더 확실하게 그것을 느꼈을 상대는

괴성을 지르며 중단차기 경쟁을 깨고

상단차기를 시도했다.


“.....Wooo...... Kuaaaaaa!!"


부웅-

섬뜩한 소리를 내며

그의 다리가 허공을 가르는 순간

난 빠르게 시계방향으로 돌아 뒤차기를 준비했다.

뒤통수로 날카로운 바람이 스쳐가고

오른쪽 어깨 너머로 상대의 모습을 확인한 난

훤히 들어난 상대의 옆구리를 향해

깊숙이 발차기를 찔러넣었다.


‘뿍!’


제대로 들어간 뒷차기는

요란한 소리가 나지 않는다.

호구에 맞고 나오는 게 아니라

호구의 단단한 면을 꺾으며

상대의 갈비뼈 안쪽까지 묵직한 충격을 전해주는 것이다.


“Damn......!!!"


뒤차기를 맞고 쓰러지며 땅을 짚으려다

왼팔을 제대로 못 가눠 고꾸라진 그.

이후로도 한 동안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그를 본 심판은

바로 경기종료를 선언했다.


“청, 패! 홍, 우승!”

“오아차!!!”


경기도 대회 우승.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짜릿한 쾌감에

두 손을 머리 위로 번쩍 들었을 때

난 발견했다.

내 왼팔이 이상할만큼 바깥으로 꺾여있는 걸....


“...... 끄아아아아!!”


김은희.

3KO로 경기도대회 우승.

왼팔 골절로 전치 8주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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