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학년 동안
너무 교양과목만 챙겨 들어서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공학점이 모자라네요.
다음 학기까진 전공으로 빡세게 밀어부쳐야겠습니다.
============================ 전공은 그때끄때 꼬박꼬박 ===========================
도대회 이후
도장 앞엔 큼직한 현수막이 걸렸고
내 목엔 깁스가 걸렸다.
“...... 볼 때마다 황당하네요.
어떻게 팔이 부러질 때까지 싸워요?”
“말했잖아요. 워낙 흥분해있어서 몰랐다고.”
“그놈의 흥분 두 번 했다간 목 부러지겠네요.”
“그래도 어쨌거나 이겼으니 다행이죠.”
“이기고 지는 게 문제에요? 부모님 생각을 해야죠!”
“아 맞다, 집에 전화해야지.
어디보자 전화기가....”
하루 수업이 모두 끝나고
도장 사무실에서
피아노 아줌마와 커피를 마시다
뒤늦게 부모님 생각이 든 난
어디다 뒀는지 모를 무선전화기를 찾아 주위를 살폈다.
그때, 도장 문이 열리며
검은 정장을 입은 한 무리의 남자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따~ 분위기 한 번 꾸리~하구만.
땀 냄새가 아주 진동을 한다, 진동을 해.”
“어이~ 사장님 안 계신가?
잠깐 얼굴 좀 봅시다! 예?”
말투로 보나 목소리로 보나
어째 귀에 많이 익은 소리.
도대회 1차전의 악몽을 떠올리며
사무실 밖으로 나가자
도장 안에 있던 사람들 외에도
검은 정장의 남자들이 복도까지 들어차 있었다.
“...... 어이구, 나왔네.
어째 안녕 좀 하셨어라?”
“예, 뭐. 그럭저럭.
여기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무슨 일은 무슨 일이여.
확 아구지를 모사불라고 왔지.
일단은 우리 형님께서 보자싱께
쪼까 얼굴이나 보고,
저승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인사나 하드라고.”
“....... 저희 조부모님 아직 살아계십니다만.”
“그럼 가는 길에 인사 하면 될 거 아니여.
그 새끼 말 많네, 그거....”
“말이라면 그쪽이 저보다 훨씬 많이 하셨는데....”
“아따 확! 그냥! 지금 모사불라!
주둥이 다물고 곱게 내려 와라, 잉?”
이거 참 어떻게 해야 하나.
의외로 별 탈 없이 넘어갔다 생각했는데
대회 다 끝나고 다시 이런 일이 오다니.....
괜히 으슥한데 끌려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당하느니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는 도장에서
내 살길을 찾아야 하나 고심하고 있을 때
사내들을 헤치고 곽두기 선수가 나타났다.
“오랜만이오.”
그의 등장에
주변에 있던 사내들은 바로 자리를 비켜섰고
나와 입씨름을 하던 사내는
쪼르르 그에게 달려가 입을 놀렸다.
“어이쿠, 성님 그냥 차에 계시지
힘들게 또 올라오고 그러십니까.
지금 안 그래도 코뚜레 빡 잡고
끌고 내려가려던 차인데.....”
“막내 넌 왜 그렇게 상황도 모르고
무조건 들이대고 쌌냐.
저쪽 가서 벽 보고 서 있어라.”
“...... 벽 보고 말입니까?”
“그래, 저쪽, 하얀 벽.”
시끄럽던 그가
원망의 눈길을 한 번 날린 뒤 퇴장하고
한 발짝 앞으로 나온 곽두기 선수는
양손에 낀 가죽 장갑을 벗으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떤 곳인가 궁금했는데 의외로 조촐합니다?”
“...... 태권도장이 요란뻑적지근할 건 또 뭐 있겠습니까.
다 고만고만하지요.”
“난 이 시간이면 한창 사람들 운동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벌써 다 끝났나봅니다?”
“네, 운동은 9시면 끝이라.....
구경하시려면 좀 더 일찍 오셔야겠네요.”
과연 애들 한창 운동하고 있을 시간에
이렇게 깍두기들이 들이닥치면
무슨 소문이 돌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지만
일단은 예의상 그렇게 말해보는 나였다.
“9시에 끝이면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직장인들 뭐 그런 사람들도 올라 하면....”
“저희 도장은 대부분 초중고 학생들이라......”
“아, 그래요? 성인반은 없어요?”
“네. 보통 잘 없죠. 아무래도.”
“허어.... 그것 참 난감하네.
저도 좀 등록을 할까 하고 왔는데.”
이건 또 무슨 마른하늘에 개 풀 뜯는....
순간 뒷목이 뻐근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나였지만
섣불리 내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 아아, 네, 그러셨나요?”
“음... 지금 가장 작은 반이 몇 명이오?
시간별로 봤을 때.....”
“6시에 중등부가 5명입니다만....
같이 운동하시기엔 좀....”
“그럼 5명만 있으면 한 타임 더 하실 수 있겄네.
어디보자......적당한 놈이.....”
대체 어떻게 하면 이야기가 곧장 그렇게 되는지
미처 되묻기도 전에 주변은 온통
사내들의 아우성으로 가득 찼다.
“형님! 전 어려서부터 태권도 선수가 꿈이었습니다, 형님!”
“성님! 전 태권도 3단이지라!
아마도 시키면 여그서 저가 제일 잘할 것이어요!”
“성님! 저희 돌아가신 저희 아부지께서
남자는 꼭 태권도를 배워야 한다고 하셨어라!
지금이라도 부모님께 효도하는 마음으로
태권도의 길을 걷고 싶으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끌어다
태권도장에 다니겠다고 나서는 남자들.
다 큰 어른들이 이런 걸로 아웅다웅하는 걸 보니
한편으론 웃겼지만
이 뒷이야기가 어떻게 될까 걱정이 천근만근이었다.
“자자, 일단은 여기서 운동 좀 해야 할 애들이랑
기본적인 예의를 좀 배워야 할 애들만 좀 추려보자.”
“성님! 전 의사가 운동부족이라 운동 안하면 내일 모레 죽는답니다!”
“형님! 전 정말 싸가지가 없습니다!
술만 먹으면 부모님도 못 알아보고
완전 인간 개 말종입니다, 형님!”
“형님, 얘는 그래도 술만 안 마시면 괜찮습니다.
제가 진짜 막장으로 싸가지가 없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숨 쉬는 것도 귀찮습니다!”
....... 과연 저렇게까지 자신을 깎아내려서
태권도를 다녀야 하는 걸까
갈수록 정도를 더해가는 사내들.
그런 가운데서 고민을 계속하던 곽두기 선수가
나에게 물었다.
“허어 이것 참.... 애들이 이렇게 아우성인데
누구는 다니고 누구는 안 다니고 그럴 수도 없고....
그냥 내가 다섯 명 분 내고 다니면 안 되나?
여기 한 달 등록비가 얼마요?”
“예? 아 그게 그러니까....한달에 8만원이긴 한데....”
진지하면서도 자기 좋을 데로 다 결정해버리는 그를 보며
참 세상 편하게 사는 구나 감탄하고 있을 때
뒤에서 사내들이 소리쳤다.
“안됩니다, 성님! 저희도 함께 하겠습니다!”
“너 이 호로새끼, 지금 우리 형님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겠다는 거여, 뭐여! 앙!”
“잠깐만, 그라믄 우리가 그냥 우리 돈 내고 다니면 되는 거 아닌가?”
“맞다! 성님! 저는 성님이 뭐라 하셔도
그냥 제 돈 내고 다니겄습니다!”
이건..... 정말로 좋지 않다.
오늘 하루야 그렇다 치고
매번 이렇게 어깨들이 들락날락 하는 걸 보면
내가 사채 쓰고 매일 쪼이는 걸로 밖에 더 보이겠는가?
아무리 좋게 봐도 조폭 양성소인데.....
“아아, 자 진정들 하고.
그러면 정말 다섯명만 딱 뽑자.
막내, 만두, 도끼, 로보캅 그라고.....
나까지 하면 딱 다섯명이네, 됐다.”
“아아! 성님! 제가 진짜 싸가지가 없는....아 썽님!”
수많은 사내들의 아우성을 뒤로하고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는 곽두기 선수.
“자, 이제 별 문제없지요?
내일부터 이 시간에 나오면 되려나?”
“으음...... 잠시만요. 그전에......
몇 가지 약속을 좀 해주셔야겠습니다.”
이미 돌이키기엔 이야기가 너무 많이 진행된 상황.
어떻게 하면 이 후유증을 최소화 할 수 있을까
대비책을 생각해보는 사이
막내라 불렸던 사내가 얼굴을 불쑥 들이밀며
험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따 지금 우리 성님이 다녀주시겠다는데
그것만으로 감사합니다 할 것이지 약속은 뭔 약속이여,
확 다시는 약속 못하게
새끼손가락을 뒤로 접어버릴랑게....”
“막내 넌 또 언제 튀어나왔냐.
조용히 벽보고 서있어.”
곽두기 선수의 한 마디에
다시 어깨가 축 처진 채 퇴장한 그.
그 사이 난 몇 가지 대비책을 떠올렸다.
“일단 오실 때 검은 정장은 피해주시고
각자 편한 복장으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변 상가 분들이나
도장 학생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써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왕 다니기로 하셨으니
수업엔 착실히 임해주시 바랍니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땐 성인반을 없애도록 하겠습니다.”
“거 참 바라는 것도 겁나게 많구만.
댁이 지금 뭐를 착각하고 있나본데
지금 밀고 당기기 하고 있을 처지가....”
“막내야.....”
“예, 벽 보고 있겠습니다. 성님.”
“원비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카드 받으면 지금 결제하고 가고,
아니면 내일 현금으로....
아, 수표도 받으면 지금 드리고.”
“예, 뭐, 어느 쪽이건 편하신 쪽으로....
지금 등록하시면
미니 게임기랑, 태권도 열쇠고리, 문화상품권 중에
선물을 드리고 있습니다만.
어느 쪽으로 하시겠습니까?”
“...... 허, 허허허허! 허허허허허허!
얘들아, 지금 들었냐?
우리 관장님께서 등록 선물로
미니 게임기를 주신단다!”
“와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일단 기본적으로 주는 건
다 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말한 건데
이렇게까지 대폭소를 하니
화가 날 만큼 머쓱해진 나.
하지만 곽두기선수는 금방 다시 진지한 얼굴로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 김관장님, 그 배짱.
그 배짱을 우리 애들이 좀 배웠으면 합니다.
가자, 얘들아!
아, 게임기 받아서 가야지.”
그렇게 그는 도장문을 나섰다.
게임기 다섯 대와 함께....
“.....갔네요.”
“네, 갔네요.”
“......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어쩌긴요, 다니겠다는 데 열심히 가르쳐야지.”
순식간에 조용해진 도장 사무실엔
앞으로 생길 파란을 예고하듯
서늘한 바람만 스쳐 지나갔다.
‘똑똑.’
“...... 이 시간에 또 누구야?”
이제야 좀 조용해졌다 생각했는데
또다시 도장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조금은 신경질이 난 나.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열었을 때
그곳엔 또다시 의외의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Hi, I'm so glad to meet you again.
I've brought over the letter of recommendation from master Shim.
He said that you'll be the best teacher to me.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심사범님한테서 추천서를 받아 왔어요.
그는 당신이 내게 최고의 스승이 되어주실 거라 하셨습니다.)"
“.......What?"
"I've brought over the letter from...."
“아줌마! 아줌마 잠깐 와봐요!
얘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이거?
Wh....What the Fuck?!”
...... 우리 도장이 어디로 가려고 이러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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