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의사랑이야기

글/그림 : 바다의기억

피아노 위에 태권도 <55화> 축하파티

졸업까지 남은 시간 1년.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보낼지

참 생각이 복잡한 요즘입니다.


========================= 여러분은 어떤 삶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


김왕장 선수의 부상은 과연 우연이었을까?

혹시 태룡이가 준결승에서 패했다면 김왕장 선수와 붙었을

순운발 선수의 저주는 아니었을까?

그렇게 알 수 없는 의문점을 잔뜩 남긴 채

태룡이는 처음 출전한 도대회에서 우승의 영광을 손에 넣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관장님, 내일 경기는 자신 있으시죠?
태룡이가 먼저 우승했다고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김은희 선수는 저런 운이 없어도
충분히 우승 할 수 있을 거예요.”

“하긴, 현수막에다가
‘고등부 임태룡 우승’ ‘관장 김은희 준우승’
뭐 이렇게 적을 수는 없겠네...
준우승도 못하면 말할 필요도 없고.
관장님, 화이팅!”


그렇다.

시대회 때도 느꼈던 거지만

한 도장의 관장을 맡고 있는 이상 어느 대회를 나가건

내가 제일 좋은 성과를 거둬야 한다.

이미 태룡이가 먼저 우승을 거둔 이상

나의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다.


“..... 뭐, 일단 열심히 해야죠.”


하기야 누군들 대회에 나오면서

우승을 목표로 하지 않겠는가?

일단 최선을 다해 싸웠으면

결과는 결과대로 받아들여야지

지금 뭔가 특별히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우선은 태룡이 우승 축하 기념 파티나 할까요?
간단하게나마....”

“오우! 오우! 파티! 오우!”


아무래도 허탈한 결승전 내용 탓인지

별 말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파티라는 말에 바로 환호성을 지르는 태룡이.

방방 뛰어다니며 오두방정을 떠는 모습이

아무래도 발목은 다 나은 모양이다.


“어디가 좋을까요? 맛있는 곳 아세요?”

“글쎄요... 이 주변은 잘 몰라서...”

“흐음... 일단 적당히 돌아다녀 보죠, 뭐.
인천까지 가서 먹기엔 시간도 늦었고.”


시간은 벌써 저녁때를 지나

8시가 되어가고 있었기에

우린 적당히 대회장 주변을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오늘 경기에 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출구를 향해 걸어가는 길,

뒤에서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뛰어왔다.


“잠깐만요~! 임태룡 선수~~! 잠깐 잠깐~!!!”


누구인가 싶어서 돌아본 그곳엔

커다란 카메라케이스와 가죽 가방을 메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남자 한 명이 있었다.


“...... 누구시죠?”

“저.....저...... 쿨룩..... 주간 수원마당....김용태....쿨룩....”

“아아~ 아까 오후에 취재하러 오셨던....”


그의 정체는 4강전을 앞두고 태룡이를 인터뷰하러 왔던

지역신문의 기자였다.


“하아....하아.... 우웨~쿨룩!!”

“....괜찮으세요?”

“허억...허억.... 예, 괜찮습니다.
제가 원래 체력이 좀 약해서... 쿨룩 쿨룩.
어디 가시던 중인가요?
그럼 걸으면서....쿨룩! 말씀을....쿨룩 쿨룩!”

“아녜요, 일단 숨 좀 고르시고....”


숨을 몰아쉬다 못해

얼굴색까지 창백하게 변한 그의 모습에

우리 모두는 그가 어느 정도 숨을 고르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휴.... 이제 좀 살겠네....이거 실례했습니다.
시합 후에 바로 인터뷰를 부탁드리려고 했는데
앞에 인터뷰 하던 선수가
사진 촬영을 너무 까다롭게 굴어서....”

“에에.... 그랬군요. 그럼 이제 뭐 어떻게 하나요?
인터뷰는 여기서 바로 하나요?”

“아닙니다, 식사 아직 못 하셨죠?
제가 맛있는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인터뷰는 그쪽에 가서 하시죠.”

“예? 아.... 예, 그럼 저희도 좋죠.”


그렇게 도착한 인근의 한식집.

메뉴는 여느 가게와 다르지 않았지만

살이 탱탱하게 차있는 간장게장부터 시작해

호화로운 밑반찬이 무기인 것 같았다.


“음식은 입에 잘 맞으세요?”

“아~ 예, 아주 맛있네요.”

“아하하, 다행입니다. 그럼 천천히 맛있게 드시고...
임태룡 선수, 어디까지 했었죠?
아, 대회 나오기 전 각오까지 했네요.
그럼 대회에서 가장 힘들었던 상대는...”


나와 한선생들이 앞에 놓인 음식을 먹어치우는 동안

태룡이는 처음 하는 인터뷰에 긴장했는지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

꽤나 모범답안 같은 내용으로 성심성의껏 응답하고 있었다.


“하나 같이 강하고 배울 점이 많은 선수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힘들었던 상대를 꼽으라면
방어진 선수를 들고 싶어요.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겨뤄보지 못한
김왕장 선수의 실력이 궁금하기도 합니다.”

“네, 방어진 선수와의 시합에서
갑작스러운 상단 돌려차기로 KO승을 따냈는데
그 발차기엔 어떤 비밀이 숨어있었나요?
방어진 선수가 그 발차기를 못 막은 이유가....”

“그 발차기의 비밀은 밝힐 수 없지만....
대담한 실행력과 자신감이 없다면
불가능한 기술이라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하하...그런가요? 역시 비밀이군요.”


대담한 실행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기술이라....

과연 방어진 선수한테 물어보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궁금해지는 나였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김용태 기자는 태룡이의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음식 값을 계산하고 돌아갔다.


“이야~ 태룡이 덕분에 잘 먹었다.”

“전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예, 다녀오세요. 원장님은?”

“전 괜찮아요.”


생각지 않았던 행운에 한껏 기분이 들뜬 우리.

한선생이 화장실에 간 사이

우린 음식점 입구 근처에 서서

입가심용 박하사탕을 씹으며 수다를 떨었다.


“관장님, 저 인터뷰 잘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잘 했다.
오늘 시합도 잘 했고 인터뷰도 잘 했고
오늘 태룡이 최고다 아주.”

“전 처음부터 못 본 게 너무 아쉽네요.
한선생님이 너무 늦게 알려줘서....
알았으면 꼭 일찍 와서 봤을 텐데.”

“하긴... 나중 경기보다야 처음 경기들이 잘하긴 했지.
그걸 보셨어야 하는데.”

“아아~ 관장님, 지금 그 말씀은
저의 목도리 뇌조 작전을 무시하시는 겁니까?
한눈팔기 작전은 또 어땠는데요?
이렇게 딱~ 시선을 끌어놓고 바로 하이킥을~!!!”

‘퍼억!’


태룡이가 들뜬 모습으로

오늘 경기에서 써먹었던 한눈팔기를 재현하는 순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범상치 않은 기운이 우릴 엄습했다.


“아~~! 뭐여 이거!”

“형님!! 괜찮으십니까, 형님?”


옷에 뭍은 먼지를 털어내며 수선을 떠는

딱 봐도 조폭 같은 한 무리의 남자들.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던 중

타이밍 안 좋게도 태룡이가 휘두른 발에

등 언저리를 맞은 듯 했다.


“아 나 이런 호X새끼를 봤나!!
야 이 자식아, 넌 뭐야!!”

“죄, 죄, 죄송합니다....”


험악한 분위기에 태룡이가 멈칫멈칫 하는 사이

남자 한 명이 달려와 태룡이의 멱살을 붙잡았다.

깜짝 놀란 태룡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를 하며

나에게 구조의 눈빛을 보내왔다.

...... 이 사태를 어찌해야 할까.


“어이쿠, 죄송합니다.
애가 오늘 너무 좋은 일이 있어서....
너무 까분다 싶더니 기어코 사고를 쳤네요.”

“넌 또 뭐여? 앙?!”

“일단은.... 그 아이 보호자입니다.”

“아니 보호자면 보호자 답게
애가 사고를 못 치게 잘 단속할 일이지
이거 어떡할 거여 이거!!
우리 형님 등짝이 어떤 등짝인디!”

“아유, 그래서 이렇게 사과를 드리잖습니까.
모쪼록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주시면
정말로 감사하겠습니다.”

“얌전히 길 가던 사람을 냅다 발로 차놓고 용서?
댁 같으면 ‘어유, 그러셨어요?’ 하고 넘어가게 생겼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어린 애가 기분 좋아서 까불다 그런 걸
진심으로 사과하면 받아줘야지 어쩌겠습니까? 허허.”

“뭘 잘 했다고 실실 쪼개, 쪼개긴?
다 필요 없고, 경찰 불러!
세탁비에 치료비에 정신적 피해보상까지 싹 받아야 쓰겄으니까!”


과연 사과한다고 곱게 넘어갈 무리는 아닌 듯

남자는 점점 더 큰 목소리로 윽박을 질러댔다.


“그, 일단은 애 멱살부터 좀 놔주시겠습니까?
그거 놓는다고 도망가진 않을 테니까...”

“아니 이 자식이, 어따 대고 이래라 저래라여?
손바닥이 발바닥 되게 싹싹 빌어도 모자랄 새끼들이....”

“누가 사과를 안 하겠답니까,
다만 애가 너무 놀랐으니까
멱살 잡은 것만 놓고 천천히 이야기를 하자, 그거지요.”


험악한 분위기에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주위를 피해가는 행인들.

대체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태룡의 발에 맞았던 우두머리격인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아가야, 그만 혀라.
우리가 무슨 자해공갈단도 아니고
애가 실수로 그랬다는데, 쪽팔리지도 않냐.”

“하지만 형님, 아무리 그려도....”

“......”

“.......아유, 알겄어라.”


남자의 한 마디에

그는 태룡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얌전히 무리의 뒤에 가서 섰다.


“거, 미안하게 됐소.
내일 중요한 행사가 있다 보니
우리 동생이 좀 신경이 곤두서서.....”

“아닙니다, 저희야 말로....실례가 많았습니다.”


내가 다시 한 번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자

그는 1~2초쯤 말없이 내 모습을 훑어보더니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얘들아, 가자.”

“예, 형님!”


그들의 모습이 인파속으로 사라지고

드디어 사태가 일단락되었나 안도하는 나에게

피아노 아줌마가 소리를 질렀다.


“뭐예요, 태권도 관장이란 사람이 창피하게!”

“예? 뭐가요?”

“남자면 남자답게 팍! 나가야지 굽신굽신... 창피하게.”

“...... 태룡이가 먼저 잘못했으니까 사과를 해야죠.”

“....그래도!”

“아무 때나 힘 믿고 들이밀면
그게 조폭이랑 다를 게 뭐가 있어요.
잘못한 건 잘못한 거고 사과할 건 사과해야지.”

“.....흥, 흥, 흥, 퍽이나.
한선생님 오면 다 일러 줄 거야.”


....... 이걸 더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나.

일단 사태는 잘 마무리 됐으니 그걸로 된 것 같긴 한데...

기분이 썩 좋지 않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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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사랑이야기

223화-피아노 위에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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