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의사랑이야기

글/그림 : 바다의기억

4화 -발표준비2-

지금 훈련이 한 절반 정도 지났겠네요. 

 

글이 제대로 업로드 되는 지 확인할 길이 없는 저로선

 

답답하기만 하지만....

 

그래도 세월이 가긴 가나 봅니다.

 

빨리 돌아와서

 

글에 달린 코멘트도 읽고, 쪽지도 보고 싶네요.

 

 

================== 하나도 없으면 그런 낭패가 있나 ===================

 

 

 

분위기 있는 교향곡들을 들으며


그녀와 단 둘이 앉아있는 기분은


바늘방석 위보다 따끔거리면서도


구름 위보다 설레고 두근거렸다.



이 앞에 테이블이랑 커피 두 잔만 있으면


정말 분위기 있을 텐데.



생각만 할 게 아니라 실행에 옮겨보자고 마음먹은 난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기억 - 저... 커피 드실래요?


민아 - 예?


기억 

- 왠지 조금 피곤해서


커피라도 한 잔 마실까 하고요.


같이 드실래요?



좋아, 자연스러웠어!!


매끈한 문장에 부드러운 미소까지!!



민아 - 아, 피곤하시면 먼저 들어가세요.


기억 - 예?! 아, 아뇨! 괜찮습니다.



문장이 너무 매끈해서 미끄러진 걸까


생각지 못한 답변으로 날 당황스럽게 만드는 그녀.


잠시 엉거주춤하게 서있던 난


삐질삐질 다시 그녀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민아 - ..... 커피 드신다면서요?



.... 구박받고 있다.


그렇지 않고야 이렇게 사람을 무안하게 할 리가 없다.



아무래도 그녀는 날 싫어하는 걸까?


하긴.... 처음 말을 나눴을 때도


전혀 못 알아보고 실수를 했던 데에다


대본 검토할 때도 맞춤법 틀렸다고 트집 잡고...


아무튼 좋은 인상을 심어줄 만한 일이 없긴 없었다.



지금도 괜히 찝쩍대는 것처럼 보일 지도....



다시 각 잡기 자세로 들어간 난


얌전히 음악에 정신을 집중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1 악장-



기억 - ....... 이런 느낌이었어요.



그 연주를 듣고 있다 보니


문득 서러운 과거가 떠올랐다.


여름방학 내내 울리지 않던 휴대폰을 옆에 두고


방바닥을 뒹굴 거릴 때의 그 기분.


오죽 할 짓이 없었으면 공부를 했을까.



민아 - 예? 어느 부분이요?


기억 

- 이 음악 시작할 때 그 멜로디가


당시의 저를 떠올리게 만들어 주네요.


이 부분에 한 번 넣어보죠.



난 대본에서 여름방학의 절규 장면을 찾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민아 - 음.... 박자에 맞춰서 뒤척뒤척?


기억 - 그렇죠.


민아 - 재밌겠네요. 그렇게 하죠.



이번엔 분위기가 괜찮았다.


좋아, 이런 분위기로 계속 가는 거야!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중간 중간 제법 많은 곡이 정해졌을 때


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기억 - 저 커피 좀 사러 다녀오겠습니다.


민아 - 네~.



별다른 반응 없이 곡 찾기를 계속하는 그녀.


지금도 커피 생각은 없나보다.



쭐래쭐래 혼자 매점에 도착했을 때


난 심각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 대체 어떤 걸 사다줘야 할까?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면 ‘저도요~.’ 같은


반응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고


내 것만 사가자니 정말 싸가지 없을 것 같고.



난 고민 끝에 딸기우유를 집어 들었다.


그녀의 이미지엔 딸기우유가 딱이다.



하지만 잠시 후


딸기우유와 커피를 들고 연습실로 돌아갔을 때


그녀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미간을 찌푸리는 것이 보였다.



워낙 과묵하고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난


본의 아니게 사람 표정을 파악하는 게 빨랐다.


특히 ‘불쾌지수 높음.’ 과 ‘화남’에 대해.



지금 저 표정은 ‘조금 열 받음.’ 이다.


딸기 우유에 뭔가 안 좋은 추억이 있나?



기억 - ..... 커피 드세요.



뭔가 꺼림칙한 느낌에 커피를 내밀자


그녀의 미간에 있던 주름이 활짝 폈다.



민아 - 커피 드신다면서요? 딸기우유는 뭐예요?


기억 - 왠지... 갑자기 이게 마시고 싶어서.....



솔직히..... 딸기우유 같은 건


초등학교 이후 입에 대본 적도 없었다.



생긴 걸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내가 딸기우유를 마신다고 하면


당장 구속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찌됐건, 커피를 받아든 그녀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왜지? 왤까?


팩을 뜯어 입에 한 모금을 머금었을 때


난 그 이유를 깨달았다.



........ 맛없다. 달짝새큼한 게 찝찝하다.



민아 - 엑....



그 때 옆에 앉아있던 그녀도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무슨 한약 먹는 어린아이 같은 그녀의 표정.


.....커피도 싫어하나?


그럼 왜 그렇게 즐거운 표정으로 받은 거야?



기억 - 이거 생각보다 맛이 없네요.


민아 - 그래요? 바꿔 마실래요?



혹시나 싶어서 기분을 떠본 한 마디에


선뜻 바꿔 마시길 제안하는 그녀.


도대체 속내를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처음부터 커피를 마시려던 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캔을 건네받아 입술에 댄 순간


문득 청춘만화의 한 장면이 뇌리를 스쳤다.



기억 - .....!!



이건..... 간접 키스!!!!!!


짐짓 당황한 난 슬쩍 그녀의 얼굴을 돌아봤다.


저 입술이 방금 전 여기에....



내가 그런 어쭙잖은 망상에 빠져 있을 때


그녀가 날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설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눈치 챈 건가?



민아 - 저 사실은 우유 무~지 좋아해요. 특히 딸기우유.


기억 - .......


민아

- 그런데 왠지 다른 사람들이 주면


‘빨리 키 좀 커라.’ 아니면.......


아무튼 그런 뜻으로 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거든요. 바보 같죠?



그런 것이었구나.


그녀는 키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다.


내가 볼 땐 딱 적당한 것 같은데... 귀엽고.



난 그날 늦은 저녁 무렵까지


그녀와 함께 음악을 들으며


이런 저런 짧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민아 

- 아~ 이제 이걸 테이프나 시디에 옮겨야 하는데


잘 될까 모르겠네요.



기억 - 음..... 제가 해올 게요.


민아 - 네?


기억 

- 대본 쓰시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이 정도는 제가 해 와야죠.



그녀는 예상 밖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선뜻 뭐라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난 그녀의 손에서 시디 묶음을 받아 들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맡아서 하려고 하는 지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웬만한 고생은 사서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일까.



잘 보이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


솔직히 아직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나랑 나이가 동갑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어려보이는 외모로 봐서 연상 같진 않은데....



그럼 대체 뭘 믿고 그러냐?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할지 모르지만


그건 호기심과 매우 비슷한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만난 이성.


똑바로 바라보는 것조차 겁나면서도


어떻게든 또 옆에 붙어있고 싶은


그녀는 신비로운 미지의 존재였다.



난 지금까지 내 자신이


상당히 무뚝뚝하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어지간한 일이 있어도


언제나 강 건너 불구경처럼 ‘그런가보다’ 할 뿐.


심지어 내 자신에 관한 일에도


기억에 남을 만큼 화를 내거나 슬퍼해 본 적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내가 그녀 옆에선


작은 일에도 설레고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고 있다.


그리고.... 조금 더 그 기분에 빠져들고 싶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나는


그녀의 동글동글한 글씨가 가득 적힌 대본에 따라


노래를 테이프에 복사하기 시작했다.



뭐 금방 끝나겠지... 라고 생각했던 작업은


꼬박 5시간을 하고도 끝나지 않았다.


딱히 버벅거린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대체 그녀는 무슨 배짱으로


이 작업까지 해오겠다고 말한 걸까?



뭔가 그녀만의 비법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괜한 일을 맡은 것 같다는 후회를 하며


난 그날 밤을 하얗게 불태웠다.




다음날 학교로 가는 길.



밤새 이어폰을 끼고 있던 후유증으로


머리는 지끈 지끈 아프고


귀에선 쇼팽과 베토벤이 편을 먹고 슈베르트, 헨델과 함께


2:2 태그 토너먼트를 벌이는 소리를 들렸다.



인간인가 오디오인가.....



불쾌지수 MAX의 아름다운 정신상태에


쾡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난


누가 봐도 경계대상 1호에 포함될 만 했다.



기억 - 크르르르.....


친구1 - 응? 기억아 너 왜 그러냐?


친구2 - 야, 가까이 가지 마, 물려!



‘덥썩.’



친구2 - 끄아아아아악~!!



잠시 후 파상풍 및 광견병 예방 주사를 맞으러 간


친구2는 뒤로 제쳐두고


저녁 무렵 난 다시 연극부 연습실을 찾아갔다.



김씨 - 으아~ 뭔가 굉장해 보이는데?


허씨 - 오늘부터 여기서 연습하는 건가?



난 어제 노래를 들으러 와봤지만


이번이 처음인 김씨와 허씨는


한참 동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민아 - 적당한 곳에 가방 놓고 앉아계세요.



그녀는 연습실 한쪽에 있는 옷장에서


옷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연극 때 쓸 의상을 찾나보다.



난 밤새 녹음한 테이프를 건네주기 위해


그녀에게 다가갔다.



기억 - 저.... 이거 다 해왔는데요.


민아 - 에? 이게 뭔데요?



2:2 태그토너먼트에서 배틀로얄로 종목을 바꾼


거장들의 싸움을 종결짓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머릿속에 울렸다.



바로 어제 일인데 까먹은 건가...


난 대체 뭘 위해 그 노가다를 한 거지?



기억 - 어제..... 노래 정한 것들이요.


민아 - 에에? 그걸 벌써 다 했어요??



안 그래도 동그랗던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뭔가 굉장한 묘기라도 본 듯한 그녀의 반응에


난 갑자기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민아 - 다음 주까지 하셔도 되는 걸...



굉장히 큰 선물이라도 받은 것 같은 그녀의 표정에


난 괜히 쑥스러운 기분까지 들었다.


자꾸 웃으면 바보스러워 보일 텐데.....



김씨 - 나 어제 비디오가게에서 플랜더스의 개 빌려다 봤다.


허씨 - 어? 나도 며칠 전에 빌려다 봤는데.


김씨 - ..... 혹시 학교 밑에 있는 풀빵 비디오 대여점에서?


허씨 - 응. 어떻게 알았어?


김씨 - 빌려가서 3일 동안 연체한 게 너였냐? 응?


허씨 - 아니, 그게 다시 봐도 너무 감동적이라.....



민아와 내가 그레이트한 무드로 빠져들고 있는 사이


또다시 플랜더스 삼매경으로 빠져들고 있는 두 사람.



....... 나도 한 번 빌려다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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