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의사랑이야기

글/그림 : 바다의기억

5화 -연극 돌입-

지금 전 무사할까요?

 

과연 밥은 먹고 다닐까요?

 

아 궁금합니다.

 

대체 제가 훈련기간 동안 어떤 꼴이 될지

 

차마 상상도 못하겠군요.

 

 

아무튼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기다려주세요. 잇힝.

 

===================== 공익이 말이 많다 ===================


김씨 - 아!! 더 세게!! 더 세게!!


허씨 - 이렇게? 이렇게?


김씨 - 아! 좋아!! 더 깊숙이!!


허씨 - 으아아아!!!



김씨의 뒷목을 잡고


신나게 무릎 찍기를 해대고 있는 허씨.


맞는 놈이나 때리는 놈이나


아주 신들린 듯 난리굿을 해대고 있다.



김씨가 슬쩍슬쩍 손을 올려


다 흘려내고는 있었지만


언뜻 보기엔 정말 사람을 잡을 기세였다.



액션을 더 넣겠다고 말했을 때부터


뭔가 좀 불안하단 생각은 했지만


이건 좀 정도가 지나친 게 아닐까.



민아 - 한 눈 팔지 말고 빨리 연습해요~.


기억 - 아, 예.



대본을 고칠 때나 테이프를 만들 때만 해도


별 어려움 없이 쉽게 풀릴 것 같던 연극은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것이었다.



기억 

- 돈도 돈이지만 옆구리 시려서 안 되겠다.


나도 이젠 청춘사업에 투자해야겠어.



민아 - 좀 더 생동감 있게 모션도 넣어가면서 해 봐요.


기억 - ...... 하아.



유독 독백이 많은 내 대본.


그녀는 계속해서 ‘생동감’ ‘절박함’ 따위를 강조했지만


평소에도 이렇다할 감정표현이 없던 나에겐


그런 말들 자체가 낯설고 막막했다.



평소에 김씨나 허씨처럼


활기차게 말을 주고받는 것도


내가 하면 왠지 오버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그녀가 비웃지나 않을까 걱정됐다.



민아 - 저기요! 잠깐만 와보세요.


김씨 - 죽어~~!! 죽.... 예? 무슨 일인데요?



팔꿈치로 허씨의 등을 인정사정없이 찍어대던 김씨가


민아의 부름에 성큼 다가왔다.



민아 - 여기 잠깐 해볼래요?


김씨 - 돈도 돈이지만.... 여기요?


민아 - 예.



잠시 대본을 슥 훑어보던 김씨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세를 잡았다.



김씨

- 돈도...돈이지만.... 으아아아!!


옆구리 시려서 안 되겠다~!


나도 이제.... 청!춘! 사업에 투자할 거야!



절규하는 듯한 김씨의 연기.


그 오버의 강도는 보는 내가 민망할 정도였지만


그 마음만큼은 확실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민아 

- 음... 역시 좀 튀는 느낌은 있지만


재미있어 보이지 않아요?


상황도 훨씬 잘 전달되고.



지금 나한테 저런 연기를 하라는 건가...


그건 무리야.


도저히, 절대로, 어떻게 해도.



민아 - 어깨를 쭉 펴요! 부끄러워하지 말고!



갑자기 그녀가 내 어깨를 잡아


위로 쭉 치켜 올렸다.


어깨가 뒤로 젖혀진 순간


뻐근한 통증이 목덜미를 타고 올라왔다.



내가... 이렇게 움츠리고 있었나?



= 그렇게 어깨를 움츠리고 있으면

날아오르는 법을 잊어버려.=



순간 떠올리고 싶지 않은...


하지만 결코 잊고 싶지 않은


지난 추억의 파편이 뇌리를 스쳤다.



그 사람도... 이렇게 내 어깨를 펴주었는데.



기억 - 다시 한 번 해볼게요.


민아 - 파이팅!




그렇게 힘든 연습의 시간을 지나


대망의 발표일.



인원이 적은 만큼


일인삼역, 사역씩도 맡아야 했던 우린


여러 벌의 의상에 역할을 써 붙여


각각의 등장인물을 구분했다.



저 인간들이 이번엔 어떤 걸 보여주려나....


하는 기대감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시선을 헤치며


김씨가 무대로 올라섰다.



김씨 

- 나도 드디어 대학생!


대학생활을 잘 하려면


뭐니 뭐니 해도 인맥을 잘 만들어야지!!


좋~아. 먼저 선배님들한테 잘 보여야지!!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이 흘러나오는 김씨의 등장 장면.


대부분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김씨가 신나게 대사를 하는 사이


선배 역할을 맡은 허씨는


의자와 소품을 가져다 무대에 자리를 잡았다.



종종걸음으로 허씨에게 다가가


아부를 떨며 술잔을 따르는 김씨.



김씨 - 선배님~ 제가 한 잔 따르겠습니다.


허씨 

- 오호, 이번에 들어온 신입생이냐?


자, 너도 한 잔 받아라.



김씨 - 예~입! 감사합니다.



김씨는 잔을 ‘짠’하고 가볍게 부딪친 다음


망설임 없이 단숨에 잔을 비웠다.


옆에 앉아있던 허씨가 너털웃음을 치며


김씨의 등을 두드렸다.



허씨

- 허허, 벌써부터 원샷을 하는 거 보니


장이 아주 튼튼하구나!



하지만 순식간에 일그러지기 시작하는 김씨의 표정.


그것은... 쓰디쓴 인생의 고뇌를


한 방울의 이슬로 승화시키기를 반복해


이윽고 술 한 잔을 가득 채운 뒤


단박에 원샷해 버린 사람의 표정이었다.



암울한 피아노 소나타가 울려 퍼지는 속에서


그들의 연기는 계속되었다.



김씨 - ...............우윽~ 우으윽~.


허씨 - 으앗!! 야, 얘 토할 것 같다! 화장실 어디야!!


김씨 - 괜....괜찮..... 꿀꺽.



김씨의 리얼한 연기에


사람들은 ‘어우~’ 하는 비명을 흘리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후 주량을 키우기 위한


김씨의 눈물겨운 노력이


한 편의 모노드라마가 되어 무대를 가득 채웠다.


악마의 트릴의 격정적인 선율 속에


연거푸 소주잔을 비워대다


이윽고 병나발을 불어대는 그의 모습에선


감동적인 열혈 역전 드라마 속 주인공 같은


강렬한 투혼과 전율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벌어진 설욕전.



허씨 - 내가...... 졌다...... 크허억.....



힘든 수련 끝에 얻은 승리였지만


김씨의 표정은 결코 밝지만은 않았다.



산이 그곳에 있기에 오르고 올라


더 이상 높은 봉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최후의 정상을 차지해버린 남자의


허탈한 웃음이 그의 얼굴에 감돌았다.



허씨 -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이토록 강해진 것이냐.


김씨 

- 술은 술이요, 물은 물이라.


세상의 이치가 이처럼 덧없으니


저는 술판을 떠나렵니다.



허씨 

- 강호엔 아직 나와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주당들이 수도 없이 있다.


그래도 떠나겠느냐?



마치 무협 영화를 보는 듯한 김씨와 허씨의 대사.


원랜 이런 버전이 아니었지만


조금씩 자기들끼리 바꾸더니 이렇게 만들어 놨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생각에 잠겨있던 김씨가


고독한 눈빛으로 허씨를 돌아보며


결의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김씨

- 지나친 음주는 간경화나 간암을 일으키며


운전이나 작업 중 사고 발생률을 높입니다.



허씨 - 너의 뜻이 그렇다면.... 대체 어디로?


김씨 

- ....... 청춘을 불태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이젠 새로운 인연을 찾아 떠나렵니다.



‘우우우~ 우우~ 우우우~우~ 위도 아래도 보지 마~’



반젤리스의 Conquest of paradise가 흘러나오면서


김씨는 화려하게 무대에서 퇴장했다.


이제 3분의 1이 지났을 뿐이지만


사람들의 환호는 굉장했다.


내가 마지막인데... 분위기 망치는 건 아닐까.



2막으로 넘어간 연극.


옷을 갈아입은 허씨가 무대 중앙에 올랐다.



허씨 

- 으아~ 드디어 그 지긋지긋한


홀아비 벌판을 떠나 자유를 얻었구먼.


그나저나 아무리 공대가 남대라 해도


어째 요로코롬 여인네들이 안 보이나?


안 되겄다. 아무래도 친구한테 연락을 때려서


괜찮은 가스나 하나 소개시켜 달라 해야지.



지역 불명의 사투리를 섞어 쓰며


핸드폰을 꺼내는 허씨.



허씨 

- 어이~고메. 나여. 응.


아따 뭔 일이기는....


니캉 내캉 사이에 심심해서 연락할 수도 있는 거지.


뭐라꼬? 돈 꿔줄 여유 같은 거 없다꼬?


으메, 야가 지금 사람을 뭘로 보고.



허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녀석의 인간관계도 나 못지않을 만큼


희미한 실로 아슬아슬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허씨 

- 내 여자 한 명 소개시키도.


응. 아따~ 거는 여자 많을 거 아녀.


여긴 전멸이여~



자꾸 출신지역이 바뀌는 것 같긴 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엔 거침이 없었다.


너무도 당당한 그의 모습은 빛이라도 나는 듯 보였다.



민아 - 가만 좀 있어 봐요.


기억 - 이거 참....... 막상 하려니까 또 부끄럽네요.



허씨가 대사를 이어가는 동안


그녀에게 잘 보이기겠다는 일념으로


소개팅에 나온 폭탄녀 역할을 맡은 난


교단 옆에 있는 화이트보드 뒤에서


긴 머리 가발을 쓰고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지금 내 모습을 보시면


대체 뭐라고 하실까....



난 잠시 후 허씨의 친구 역할을 맡은 김씨와 함께


무대 중앙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야유인지 환성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호응 소리에 귀가 화끈 달아올랐다.



가발 앞머리를 쭉쭉 당겨 얼굴을 가리는 사이


민아가 작은 목소리로 내게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민아 ‘어깨 쭉!! 어깨 쭈~욱!!’



무대 맞은편에서 열심히 손짓발짓을 하며


당당하게 나가라고 외치는 그녀의 모습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겹쳐 보였다.



=그렇게 어개를 움츠리고 있으면

날아오르는 법을 잊어버려.=



알아요.... 알고 있다고요.



김씨 - 어이, 허씨!! 여기다!



다시 허씨가 무대에 등장한 듯


김씨가 손을 흔들며 허씨의 이름을 불렀다.


난 가만히 고개를 숙인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허씨 - 오..... 낭자. 고개를 드시오.



느끼한 걸음걸이로 걸어와 내 앞에 서는 허씨.


그가 내 얼굴을 향해 손을 뻗을 때


난 슬쩍 고개를 틀어 그 손길을 피했다.



허씨 

- 오~ 낭~자아~. 부끄러워하는 그 모습이


새벽이슬에 젖은 한 떨기 무궁화 같구려.



다시 허씨가 내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난 앞머리를 과감하게 쓸어 넘기며


최대한 느끼한 표정으로 그를 마주 보았다.


순간 강의실 안엔


베토벤 5번 교향곡의 도입부가 크게 메아리 쳤다.



‘빠바바밤~~~. 빠바바밤~.’



기억 - 유~후. 만나서 반가워요.


허씨 - 우욱.



웃음소리와 야유 소리가


강의실이 떠나갈 듯 울려댔다.


내가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일까...



김씨 - 허씨야, 내 야그 좀 들어 본나.



김씨는 주춤거리는 포즈로 허씨를 달래려 했지만


이미 그의 표정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사람 얼굴에 주름이 저렇게 많았나....



허씨

- 야~이 잡것아!! 너도 눈이 있으면 봐라!!


저게 어딜 봐서 인간의 모습이냐.


하느님께서 육일 째에 시험 삼아 만드신


프로토타입도 저것보단 성공적이겠다.


어디 진화가 되다 만 영장류를 데려다 놓고


사람을 희롱하는 것이야~!!!



연습 때 보다 더욱 강렬한 기세로


김씨의 배에 무릎 찍기를 해대는 허씨.


그의 분노가 절절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 절규의 대상이 나라고 생각하니


열 받기는 피차 마찬가지였다.



기억 

- 어머머, 별 꼴이야!


너 돈 많아? 집안 빵빵해?


어디 발생 단계에서 문워크하다 나온 게


영장류가 어쩌고저쩌고 하고 있어?


야, 이런 애면 내가 사절이다!



어깨로 허씨를 툭툭 밀어가며


한 바탕 독설을 쏘아붙인 난


엉덩이를 씰룩거려가며 무대에서 내려섰다.



허씨 - 으아아아아!!! 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허씨의 절규와 폭행이 계속되는 가운데


무대아래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민아가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어보였다.



민아 - 잘~했어요!! 많이 걱정했는데.... 하니까 되잖아요!!



그녀의 환한 미소를 보고 있으니


왠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기억 - 원츄!



그래... 나도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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