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의사랑이야기

글/그림 : 바다의기억

피아노 위에 태권도 <57화> 유령

여름방학도 이제 보름 정도가 남았네요.

어쨌거나 본업이 학생이라

다시 돌아는 가야겠지만서도

남은 방학기간 아쉬움 없이 놀아보렵니다.


-------------------------- 달려라 청춘아 -------------------------------
바다의기억 자작 팬까페 cafe.daum.net/enlovestory


시합의 결과가 드러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빠닷,. 빠셍!!”

“찻... 컥!”


2라운드 중반.

첫발을 페인트로 준 2연속 뒤차기가

곽두기 선수의 명치에 박혔다.

호구를 입은 상태라고 해도

체중이 제대로 실린 뒤차기는

호흡곤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으윽.....끄윽....”


포인트 4:0 상황.

더 이상 그에게 희망은 없었다.


“저런 #$%~!! 형님! 괜찮으십니까!”

“형님! 기운 내십쇼, 형님!!”


관중석 난간에 다닥다닥 붙어

그의 시합을 지켜보는 어깨들.

그들의 응원과 기세에 힘입어

곽두기 선수는 어렵게 몸을 일으켰지만

심판은 시합을 중지시킬 눈치였다.

움직임이 확연히 느려질 정도로 충격을 받은 채 시합을 계속하면

다음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치명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심판이 중지 선언을 결심하고 손을 올리는 순간,

곽두기 선수는 심판에게

위협적으로 송곳니를 드러내 보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보소, 계속 합시다, 예?”

“......”


독기가 오를 대로 오른 선수.

그 뒤에 있는 수많은 어깨군단.

당사자는 할 의욕이 넘치고 있는데다

2라운드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겁먹고 판정을 바꾸었다는 말에 대한 변명거리로는

충분한 양의 이유가 있다.


“...계속!!”


시합은 계속되었다.

아직 뒤차기의 데미지를 회복하지 못한 그의 다리는

경기장에 무겁게 박혀 있었다.


“.....타, 차아, 빠셍!!”


첫 발은 예고편, 두 번째는 본격적인 눈속임.

세 번째 발은 그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경기 중 느낀 그의 약점은

연속 공격에 놀랍도록 약하다는 것이다.

아마 이렇게 마음먹고 덤빈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


관자놀이에 묵직한 충격을 받은 그는

오기로 버티고 몇 초인가를 버티고 서 있다가

결국 경기장 위에 무릎을 꿇었다.


“청, 패!”


곽두기 선수가 쓰러지자

그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던 심판은

바로 시합 종료를 선언했다.


“야! 시합이고 뭐고 가서 다 엎어버려!”

“예!!”


그의 패배가 확실시 되자

바람에 쓸리는 먹구름처럼

경기장을 향해 뛰어 내려오는 조폭들.

..... 나에게도 희망은 없는 걸까.


“....보소.”

“......”


이제부터 상황이 어찌될까

막막한 기분에 한숨을 푹 내쉬고 있을 때

정신을 차린 곽두기 선수가 나를 불렀다.

한동안은 일어나기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꽤나 맷집이 좋은 선수인가보다.


“....아저씨 쪼매 하네?”

“...감사합니다.”

“어자께는 등빨이 아깝다 싶더니 오늘 보이 진국이네.
간만에 흠씬 뚜드리 맞았소.”

“..... 이제 제가 맞을 차롄가 보네요.”

“그랄 리가 있나. 내도 운동하는 사람인데.
한창 피끓는 애들이라 쪼메 흥분해서 저러지
내려오면 바로 돌려 보낼기요.”

“그거 참.... 다행이네요.”

“...... 이름이나 다시 들어둡시다. 김 머시기요?”

“참태권도장 김은희입니다.”

“이름 좋네. 다음에 또 보면 인사 합시다.”


그렇게 곽두기 선수와

그의 피 끓는 추종자들은 조용히 경기장을 떠났다.

그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험악하던 경기장 분위기는 풀렸고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여기저기서 왁자한 이야기판을 벌였다.


온 몸에 뒤늦은 진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한선생 무리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주차장 쪽 출구에서 태룡이가 뛰어 들어왔다.


“관장님, 무사하셨네요! 경기는 이기셨어요?”

“어, 그래. 이겼다. 경기 못 봤니?”

“관장님이 선빵 치시는 거 보고
바로 차에 가서 숨어있었어요.
시동까지 걸어놓고.....”

“어...어어, 잘했다. 그래.”


경기 중엔 미리 도망치라고 말해둘 걸하고 후회했는데

막상 도망가서 차에 시동까지 걸어놓고 있었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진 않구나...


“한선생님도 못 봤어요?
내 경기는 하나도 안 빼놓고 봤다더니.”

“네, 그렇지만 캠코더는 확실히 설치해두고 나왔어요.
관장님 마지막 가시는 모습이라도 확인하려고...”


....... 스너프 필름이라도 만들 생각이었던 거냐.


그렇게 첫시합부터 요란한 신고식을 치르고

다음 상대를 확인하러 간 우리.


“다음 상대는 초고속 선수네요.”

“...... 발이 엄청 빠른 선수인가 보죠?”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선수 데뷔한지 얼마 안 된 선수인데.”


...... 이름이 그렇잖아, 이름이.


“언제 데뷔했는데요?”

“작년에 혜성처럼 나타난 기대주예요.
10대에 데뷔했다면 어땠을까 참 아쉬운 선수죠.
첫 데뷔에 전국 3위에 입상했어요.”

“...... 난데없는 강적이구만. 약점 같은 건 몰라요?”

“약점은...... 모르겠네요.
4강전 상대가 김지웅 선수였어서
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지웅이라....

참 오래 듣고 산 이름인데

새삼 대회에 나와서 들으니 감회가 새롭구만.


“...... 그때 점수가 어떻게 됐어요?”

“아마.... 3:1 로 KO패였을 거예요.”

“3:1 이라....”


지웅이가 3:1로 이긴 상대한테 진다면

지웅이를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는 거겠지?


“네, 3:0으로 리드하다가 3라운드에
단발 KO로 졌어요.”

“....예?!”

“경기 내내 거의 충격의 도가니였죠.
현역 국가대표가 무명의 선수한테
3:0으로 참패할 상황이었으니....
3라운드 중반에 터진 뒤차기가 아니었다면
김지웅 선수 은퇴했을지도 몰라요.”


이거...... 예상 밖의 강적 아닌가?


한선생은 ‘뭐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얼굴로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난 등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지웅이가 국내 선수에게 3:0 리드라니

대체 얼마나 빠른 선수기에.....


지금이라도 지웅이에게 전화해서

대책을 찾아봐야 하나 진지하게 고심하는 사이

경기는 코앞까지 다가왔다.


“김은희 선수, 파이팅!”

“힘으로 콱 눌러 버리세요! 남자는 힘!”

“조폭도 이겼는데 뭘 겁내세요.
가볍게 물리치고 오세요!
관장님 파이팅!”


현역 국가대표에 3:0 리드라는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여전히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파이팅을 외치는 일행들.

지금 저들의 마음속엔

조폭의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기쁨만 존재하는 것 같다.


“후우.... 부담 100배구만.”


좋아, 가자!

이놈을 잡으면 지웅이도 잡는다는 마음으로!


경기장에서 마주한 상대는

하얀 피부에 몹시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뾰족한 스포츠머리에

두 줄로 길게 판 스크래치까지

어딜 봐도 참 빨라보이게 생긴 얼굴.

몸 풀기 삼아 뛰는 스텝도

사뿐사뿐 가벼워 보이는 게

같은 미들급이라는 걸 믿기 힘들 정도였다.


“청, 홍, 경례! 시작!!”


안되지, 이렇게 생각할수록 빠르다는 게 더 의식돼서

볼 수 있는 공격도 못....


“...슈슛!”

‘파앙!’


....... 방금, 뭐였지?


경기 시작 직후 0.몇 초인가

분명 딴생각을 하긴 했지만

접근하는 순간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불쑥 코앞에 나타나더니

호구 차는 소리만 귓가에....


눈 깜짝할 새에 1:0으로 변해버린 전광판.

난 퍼뜩 자세를 다잡았지만

띵한 정신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슛! 슈슛!”

“큿?! 차앗!”


다음 순간, 다시 초고속 선수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마치 복싱 선수처럼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며

좌우로 요란하게 스텝을 밟고 들어오는 상대.

아차 하는 사이 눈의 사각까지 벗어나며

예상치 못한 공격을 퍼붓는 모습에

난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슙!!”

“컥?”


.......어디로 갔지?!

갑작스러운 상단 공격을 막느라 잠깐 눈을 질끈 감은 사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상대.


‘파악!’


다음 순간, 거의 등허리쯤에

발차기가 날아와 꽂혔다.


“......컥!”


태권도 경기에서 뒤를 뺏기다니...

난.... 지금 대체 어떤 상대와 싸우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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