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의사랑이야기

글/그림 : 바다의기억

2화 -봄이 오다-

다른 글들은 처음부터 3회 깔고 들어가는 데

 

왜 공대생 이야기만 개기냐!

 

라고 물으신다면...

 

작가가 군대갔거든요.

 

써놓은 분량이 얼마 없어서 올라오는 게 좀 느려요.

 

이제 한 5일 되었겠네요.

 

아.... 전 대체 언제 다시 복귀할까요.

 

======================== 넌 이미 짤렸다 ======================

 


공대 찌꺼기 조가 탄생한지 일주일.



다른 조는 이름조차 있는 듯 없는 듯 하여


사실 상 조의 기능을 상실해 가는 상황에서도


탄생에서 종말까지 위대했던 우리 조의 활약은


서양 음악의 이해 강좌 역사를 통틀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었다.



교수 - 자...음의 3요소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일동 - 음정(音程), 음량(音量), 음색(音色)이요!


교수 - 각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되죠?


일동 - ...........



강의실 한 쪽 구석에서 느긋하게 팔짱을 낀 채


‘이건 우리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야.’


라는 듯한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있던


공돌이들의 두 눈에 백만 볼트짜리 불꽃이 튀겼다.



허씨 - 음량은 파동의 진폭!


김씨 - 음정은 파동의 진동수, 또는 주기!


기억 - 음색은 정상파들의 슈퍼포지션에 따른 반복 패턴!!



우린 무적의 공대생이었다.


도레미는 몰라도 슈퍼포지션은 알았다.



일동 - 오....공대 찌꺼기.....



‘역시 공대생’ 이라는 탄성이 우릴 향해 쏟아졌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교수님도 심심할 때마다


‘자, 공대찌꺼기 조, 이걸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나요?’


라며 우릴 즐겨찾기에 추가하셨다.



그렇다고 우리가 과연 음악적 소양이 뛰어났는가.....



음의 간격에 대해 강의하던 날....

(장음정, 증음정, 단음정... 따위)


교수님이 호기심에 가득한 얼굴로 우리에게 물었다...



교수 

-공대 찌꺼기 조, 여기 악보 앞부분에서


시 에 플랫(b) 이 붙은 걸 뭐라고 하나요?



초등학교 교과과정을 착실히 이행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였지만


우린 팔짱까지 낀 채 당당히 침묵을 지켰다.


......모르니까.


수능 치기 전에도 출제위원이 똑같은 말을 하지만


막상 풀어보면 겁나게 어렵지 않은가?


똑같은 경우다.


......... 아닌가?



‘설마가 사람 잡는구나.’ 라는 듯한 눈으로


우릴 바라보면 교수님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교수 -.....기본음 ꡐ라ꡑ는 몇 헤르쯔(Hz)?


공대찌꺼기 - 440Hz!


교수 -시에 플랫이 붙으면?


공대찌꺼기 - ........



우린 무적의 공돌이였다....


당시 우리들 중 장조와 단조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비록 수업 내용은 겁나게 어려웠지만

(그건 우리들만의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김씨, 허씨와의 생활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그동안 살아온 인생 꼬라지가 비슷한 탓인지


우린 불과 얼마 전에 처음 만난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죽이 잘 맞아 떨어졌다.



그렇게 신이 나서 으쌰으쌰하다 보니


솔로탈출, 커플입성이라는 본래의 목표는


어느새 길에서 나눠준 전단지 마냥 내팽개쳐 버렸고


어떻게 하면 수업시간에 잘 참여할 수 있을지가


우리의 주관심사가 되고 말았다.



수업을 따라가기엔 기초가 부실하다고 느낀 우리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가며 예습을 하기에 이르렀다.



김씨 - 여기 우물 정(井)자 비틀어 놓은 건 뭐냐?


허씨 - 넘버잖아, 넘버.

(샵 -# 이 숫자 앞에 붙으면 넘버라고 읽는다)


김씨 - 아, 그렇구나.


기억 - 이런 무식한 것들... 뭐가 넘버냐, 샵이지.


허씨 - 응? 음악에선 샵이라고 읽나?


기억 - 이게 음표 옆에 붙으면 샵파, 샵솔... 그렇게 읽는 거야.

(절대 아니다. 파 샵, 솔 샵 이라고 읽는다)


김씨 - ..... 왜 붙이는 건데?


기억 

- 그러니까, 이게 레에 붙었다고 하면


레 오른쪽 위에 있는 검은 건반을 누르라는 소리야.



김씨 - 오..... 그럼 미에 붙었으면?


기억 - 그럼 미 위에 검은 건반..... 이 없네? 왜 없지?


허씨 - .....그런데 어디가 레고 어디가 미야? 여기?



음악의 세계는 우리가 이해하기엔 너무나 심오했다.


결국 우린 공부를 시작한지 한 시간도 채 안돼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고 수업을 따라가기를 포기했다.


이 상황에서도 드롭 안 하고 남아있는 깡이 놀랍지 않은가?



개강 후 대략 3주 가량이 지났다.


초반 수업이 다분히 이론적이었던 데 반해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나 음악 감상이 주를 이루었다.



교수

- 자, 지금 이 영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배경음악은 분위기 형성이나 감정 표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관객이 그 음악에 아무 신경을 쓰지 않고 있더라도


어느새 그 음악이 갖는 리듬과 흐름을 따라가게 되죠.


방금 마지막 부분을 예로 들어보면


단다단다 단다단다 뿜!! 두두두두두두두두 뿜!! 뿜!!


이러한 리듬은 갑작스러운 상황 반전과


등장인물의 놀라움을 표현해주기에 매우 적합합니다.



리얼한 음악을 재현하기 위한 교수님의 노력에


학생들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지만


우린 여전히 심각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보통 뭔지 모르는 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은 무지 심각하게 보인다)



교수

- 그래서, 첫 번째 조별 발표로


배경음악을 포함한 연극을 한 번 해볼까 합니다.


스토리나 음악 선정은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발표라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심각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던 우린


허무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허씨 - 뭐야, 우리랑은 상관없는 거잖아.


김씨 - 그러게... 다음에 뭔가 계산하고 그런 거 나오거든 하자.



......우린 수업 본연의 목표 자체를 잊어가고 있었다.



철저한 방관자의 자세로 돌아가


앞으로의 세계정세와 경제동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아름다운 여인네가 다가와 내게 말을 건넸다.



?? - 저기요, 저기요....저 발표 우리 조가 해요.


기억 - ...네, 그러세요. 우린 별로 할 생각 없어요.



난 아주 당연한 듯이


‘그걸 왜 우리에게 말 하시나요?’ 라는 투로 이야기 했다.


그때 그 여인의 황당한 표정을...난 아직 기억한다.


당황과 황당함이 6 : 4의 비율로 혼합된


아주 이상적인 뜨악한 표정.



?? - 우리.....같은 조잖아요...



난 그제야 첫 수업 날


엉겁결에 공대찌꺼기에 포함되었던


한 여인네의 모습을 기억해냈다.



기억 - ..... 백설공주?


?? - 예. 아니지..... 윤민아예요.


기억 

- 아하핫, 죄송합니다. 그 때 모자를 쓰고 계셔서


제가 기억을 못했네요.



솔직히 말하자면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다.


김씨와 허씨도 잊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는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의견에 동조했다.



민아 - 정~말로 저 발표 해보고 싶거든요. 같이 하면 안 될까요?



잊혀짐의 충격에서 곧 벗어난 그녀는


얼굴 앞에 두 손을 모아 보이며 다시 한 번 부탁했다.


공대생들의 최대 약점.


여자가 부탁하는 일에 약하다.



일동 - 예, 마님.



계산 문제가 나오면 발표를 하겠다던


신념 어린 목표를 포기하고

(하지만 마지막 그 순간까지 그런 게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직 그녀의 부탁 한 마디로


연극의 길을 걷게 된 우리.



하지만 실상, 아무 대책이 없는 게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연극이라고는


초등학교 학예회에서 밖에 접해보지 못한,


그나마 맡았던 역이라고는 나무나 해님밖에 없는 우리로선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막막한 상황이었다.



김씨 - 우린 뭘 믿고 예스를 해버린 걸까.


허씨 - .....그러게.



토의를 위해 빈 강의실에 모이긴 모였지만


오버로드 세 마리가 모인다고


공격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한참을 ‘그워우 우워’ 거리며 공중을 떠다니고 있을 때


문제의 발단이자 마지막 희망인 그녀가 나타났다.



민아 - 어머나, 일찍 나오셨네요?


김씨 - 딱히 할 일이 없어서요.



역시 그동안 뭔가 준비를 해온 것인지


작은 가방에 노트와 음악시디를 잔뜩 담아온 그녀.


공돌이들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감돌았다.



민아 - 저 없는 동안 의견 나온 거 있어요?


김씨 - 전혀요.


허씨 - 아무것도.



김씨 허씨를 지나 나를 향하는 그녀의 시선.


이렇게 둘이 나란히 대답을 해버리면


나도 뭔가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별 달리 할 말이 없었던 난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민아 

- 음.... 연극을 하려면 먼저 대본이 있어야겠죠.


흠.... 유니 언니한테 부탁하면 간단하겠지만


그래도 직접 해보고 싶으니까....



김씨 - 그게 누군데요?


민아 

- 예? 아.... 그러니까....


연극부에서 대본 써주시는 언니요.



허씨 - 연극부세요?


민아 - 네.


김씨 - 오오오.....



연극부라는 말에 힘을 얻은 우리.


확실히 뭔가 믿는 게 있으니 시작을 했겠지.



민아 

- 그래도 우선은 우리끼리 해 봐요.


뭔가 좋은 소재 같은 게 없을까요?


재미있으면서도.... 살짝 감동적이기도 한....



김씨 - 개인적으로는 플랜더스의 개를 참 감동 깊게 봤는데요...


허씨 - 아! 그거 난 만화로 봤었는데.


김씨 - 어? 너도 봤냐? 감동적이지? 그지?



갑자기 플랜더스의 개가 감동적인 이유에 대해


열띤 토론을 나누는 두 사람.


네로가 그림을 너무 잘 그린다느니....


네로 할아버지 너무 멋있다느니....


아무튼 내가 들어도 삼천포에서 번지 점프 하는 소리 같았다.



민아 - ....... 그럼 개는 어떻게 하려고요?


허씨 - 제가 하죠 뭐.


김씨 - 어!! 파트라슈는 내가 할 거야!



그녀는 나름대로 분위기를 진정시키고자 한 말이겠지만


이미 플랜더스의 개에 몰입해버린 두 사람에겐


파트라슈 역할이야 말로 진정한 주연으로 보였나 보다.



민아 - 후..... 저.... 그쪽 분은 무슨 의견 없으세요?


기억 - ........!!



갑작스러운 그녀의 질문에


머리털이 쭈뼛 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아로아 역이 참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난 네로 역이 맡고 싶어요???


....아냐, 아냐. 나까지 번지 점프를 해버리면 안 돼.



기억 

- 그러니까.... 저.... 우리 조가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을....


연극으로 만들어보면 괜찮지 않을까요?


사람들도 관심을 가져줄 것 같고...



민아 - ...........흠.



뭔가 의미심장한 콧소리를 내며


생각에 잠기는 그녀의 표정.


뭔가.... 좀 아닌 가?


역시 나도 파트라슈 편을 들었어야 했나?



민아 - 괜찮을 것 같은데요? 조금만 더 자세히 말해줘요.


기억 - 에? 에?



김씨와 허씨가 계속해서 파트라슈 역을 놓고 싸우는 사이


난 그녀가 가져온 노트에


내가 강좌를 신청하기까지의 과정을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처음이었던 난


더듬더듬 두서도 없이 이런 저런 말들을 늘어놓았지만


조금 시간이 흘러


그녀가 웃음을 터트려가며 관심을 보이자


신이 난 나는 혓바닥에 버터라도 바른 듯


여자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도를 아십니까?’를 따라가 버린


내 친구 녀석의 이야기까지 줄줄 늘어놓았다.



김씨 

- 그, 뭐야. 응? 루벤스 그림!!


그 아래서 파트라슈랑 같이 얼어 죽었을 때!!


으아~ 나 진짜 눈물 펑펑 났다니까!



허씨

- 맞아, 세상에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아~ 나 진짜.... 그 때 내가 살았으면....



파트라슈 역을 놓고 싸우던 김씨와 허씨가


아로아 아버지의 극악무도함과


난방을 제대로 하지 않은 교회 담당자에 관해


분개하고 있는 동안


메모를 쭉 살펴본 그녀는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내게 말했다.



민아 

- 정말 재밌을 것 같아요.


우리 한 번 열심히 해봐요.



그리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그녀.


철들고 처음 잡아보는 여인네의 가녀린 손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기억. 방년 20세. 그의 청춘에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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