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의사랑이야기

글/그림 : 바다의기억

9화 -채워주는 사랑1막-

연휴의 마지막 날.

 

.....그냥..... 죽어버릴까.

 

 

=======================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 

 

 

 

딸기우유 사건 이후 일주일.


연극이 3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연극부가 눈에 띄게 부산해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포들이


사방에서 들어오고


평소 연습량도 부쩍 늘어난 게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나야 짐 나르고 청소하는 것 외엔


달리 맡은 일도 없는 처지라


늘 한결같은 모습이지만


그녀는 눈코 뜰 새도 없이 바빠 보인다.



짤막한 쉬는 시간.


한 손엔 커피를, 다른 손엔 바나나 우유를 든 채


그녀에게 다가갔다.



기억 - .... 힘들지 않아요?


민아 - ....



우유와 함께 건넨 내 질문에


그녀는 별다른 대답 없이


날 올려다보며 빙긋 웃어보였다.


이마에 조금 맺혀있는 땀방울과


흐뭇한 웃음을 띤 표정은


그 어떤 대답보다 분명하게


그녀의 마음을 전해주고 있었다.



.....



연극 당일.



연출 - 기억아 스피커!!


기억 - 넵!


회계 - 기억아 의자!


기억 - 넵!


연출 - 기억아 철근!!


기억 - 크아아아앗~!! 힘이여 솟아라~!!



‘뽀깃.’ (허리 삐끗하는 소리.)


꿈틀꿈틀...



내가 다른 부원들과


소극장에서 무대장치와 소품들을 정돈하는 동안


다른 한 쪽에선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연극 무대.


그동안 그녀가 그토록 노력하던 것이 무엇인지


이제 곧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늦은 오후.


드디어 소극장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입구에서


입장객들에게 팜플릿을 나눠주고 있지만


난 입장객들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대기실에서 쉬고 있는 중이다.



민아 - ........



한 쪽 의자에 가만히 앉아


양 무릎 사이에 기도하듯 손을 모은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듯


상당히 느린 박자로 심호흡을 하고 있다.



지금 말 걸면 싫어하겠지?



안군 - 자니?



그때, 옆에서 불쑥 나타난 안군이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툭 얹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저런 @#$&^@#%&~!!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라 하였거늘


어찌 함부로 머리에 손까지 올려가면서


부러운 짓이야!


나도 만져보고 싶단 말이다!



민아 - 아뇨.


안군 - 설마 긴장한 거야?


민아 - ..... 조금요.


안군 - 긴장할 거 없어. 지금까지 다 잘해왔잖아.


민아 - 네.



..... 친해 보인다.


강력한 유대감의 고리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이게...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차이인 걸까.



공연 시작 5분 전.


깔끔한 양복으로 갈아입은 연출이


아이스박스 같은 걸 질질 끌고


무대 중앙으로 나섰다.



연출 

- 구우우우뜨 이부뉭~~


레위디르디스 에엔드 주웨에에루 뭰~.


잠시 후에 무대의 막이 오르겠습니다.


공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오징어~ 땅~콩, 사이다~ 있어요.



뚜껑을 뒤집자 순식간에 가판대로 변해버린 아이스박스.


차마 예상 못했던 대 변신에


관객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관객1 - 아저씨 여기 오징어요!!



객석에 있던 누군가가


그를 향해 오천원짜리 한 장을 흔들며 소리쳤다.


관객들도 제법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구나...



연출 - 여기 있습니다.


관객1 - .....어라?


연출 - 음료수는 필요 없으신지요?


관객1 - ..... 콜라요.


연출 - 오징어랑 콜라, 삼천 원 되겠습니다.



......진짜 파는 거였어!?



연출 

- 루에이르뒤르디르뒤스~ 에엔드~~ 즈에웬뚜르쓰드르뭬엔~


지금, 감동의 막이 올라갑니다!!




============연극부 2학기 첫 공연============


-채워주는 사랑-



철수역에 안군.


선희역에 민아.


마스터역에 김양.


의사역에 회계.


신(神)역에 연출.


기타 엑스트라 역에 박군 등.



때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어느 도시.


연극의 시작은 조촐한 피아노 연주와 함께였다.



시골의 작은 술집에서


피아노 연주를 해서 먹고 사는


철수는 장님이었다.



그에겐 딱히 집이라 부를 것도


가족이라 할 사람도 없었기에


일을 마치고 나면


무대 위에 있는 피아노 아래에 자리를 깔고


잠을 청하곤 했다.



술집의 마스터를 맡고 있는 김양은


그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그녀는 철수에게


식사를 주고, 일자리를 주고, 잘 곳을 주고 있다.



김양 - 오늘도 수고 했어요.


철수 - 네.


김양 - 같이 시장이라도 갈래요?


철수 - ....... 아닙니다.


김양 - 가끔은 바깥 공기도 쐬어야죠.


철수 - 괜찮습니다.



김양은 쓸쓸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다


발걸음을 돌려 무대 밖으로 사라졌다.



철수 - ...... 마스터.



그녀가 떠난 다음에야


철수는 조용히 그녀를 불러보고는


피아노 위를 더듬어


술병을 찾아 한 모금을 크게 들이켰다.



철수 - 나에게.... 자꾸 희망을 주지 말아요.



다시 한 번 술병을 들이키는 그의 모습은


몹시도 자학적이면서 암담했다.



무대 옆 커튼에서 김양이 조금 몸을 내밀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던 어느 날.


휠체어를 탄 소녀가 술집을 찾아왔다.



선희 - .....저.... 일자리를 좀 얻을 수 있을까요.



김양은 잠시 그녀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작은 무릎덮개로 가려진 그녀의 다리는


그녀가 부상으로 인해 앉아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김양 - ....어떤 일을 찾아 오셨나요?


선희 - 요....앞에.... 가수를 구한다고... 써 있어서요.



김양의 얼굴에 작은 당혹감이 스쳤다.


장님 피아니스트에 다리불구인 가수라...


그건 일종의 측은함과


묘한 조화에서 느끼는 기대감이었다.



김양 - 그럼 어디 한 번 들어볼까요? 노래는...


선희 - 아, 저.... 악보가지고 온 게 있어요.



휠체어 옆에 달린 작은 가방에서


악보를 꺼내든 선희의 손을 내려다보며


김양은 씁쓸하게 웃었다.



김양 

- 미안해요. 지금 피아니스트가.....눈이 좀 불편해서요.


악보를 바로 연주해 주진 못해요.


혹시 직접 치면서 부를 수도 있나요?



선희 - 아...그건... 잘 못하는데요.


김양 - 곡은 크게 상관없으니까.... 아무 노래나 해봐요.



휠체어를 밀고 철수에게 다가간 선희는


잠시 그와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철수와 뜻을 맞춘 듯한 그녀는


웃는 얼굴로 김양을 돌아보았다.



선희 - 저.... 시작할게요.



철수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사그라지듯, 끊어질 듯 희미해졌다가


다시 힘들게 살아나고


또다시 사그라지는 애절한 멜로디.



무대와 조명 차분한 분위기는


음악과 하나가 되어


마음 속 깊은 곳을 두드렸다.



---------------

달빛이 차네요.


그대 오는 발걸음이 시릴까 두려울 만큼


별빛이 차네요.


하늘을 보는 나의 눈이 눈물로 가득 찰 만큼



그대 지금 내게 오고 있나요.


나 그렇게 믿어도 되겠죠.


지금 불어오는 메마른 바람이


그대 곁을 지나왔기를.


내가 느끼는 그대 향기가


부디 착각이 아니기를 I believe

-------------



민아의 노랫소리가


귓가에 메아리 쳤다.


그것이 공연장 속에서 울리는 것인지


마음속에서 울리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그 노래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고


내가 그 멜로디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민아는 노래도 잘 부르는 구나.



김양 

- ....... 후. 좋아요.


언제부터 나올 수 있죠?



선희 - 아, 감사합니다! 당장 내일부터라도....


김양 - ...... 그래요 그럼.



기쁜 얼굴로 무대에서 내려서는


선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김양의 표정을 몹시 어두웠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불안감.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그날 새벽.


Close 표시가 문 앞에 걸리고


김양은 의자에 앉아 술잔을 들이켰다.


그 사이 피아노 아래에


잠자리를 깔기 시작하는 철수.



쓸쓸한 얼굴로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김양이


한 손엔 여전히 술잔을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철수 - ...마스터?


김양 - 그래. 아까 그애.... 참 잘 부르죠?


철수 - 네. 뭐랄까.... 소리가 맑다고 할까요.


김양 - 맞아. 정말 깨끗했어요.


철수 - 내일부터 나온다면서요?


김양 - 응.....



김양이 입을 다물자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리던 철수는


고개를 한 번 갸웃해 보이고는


다시 자리를 깔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지그시 바라보던 김양은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단 번에 비우곤


술기운이 물신 배어나오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김양 - 철수씨.


철수 - 예.


김양 - 예전에.... 여기 처음 왔을 때 쳤던... 그 곡 기억나요?


철수 - ... 예.


김양 - ....다시 한 번 쳐주지 않을래요.



피곤한 듯


의자를 조금 끌어다 피아노에 등을 기대며


빈 잔을 손안에 굴리는 김양.



잔잔하게 이어지는 피아노의 선율을 따라


1막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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