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의사랑이야기

글/그림 : 바다의기억

7화 -연극부 입성-

드디어 돌아왔습니다.

 

4주 동안 고생을 하고 왔더니

 

아직도 새벽 6시가 되면

 

눈이 번쩍 뜨이는 군요.

 

 

제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짧게나마 글로 써보고 싶습니다.

 

 

====================== 자, 이제 다시 들어가야지. ======================

=========================아아아아아악~!!!! ==========================

 

한 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기회를 잡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그 때 정말 절실하게 느꼈다.



연극부 입부 제의를 놓치고부터


일주일에 두 번 뿐인 수업 시간 동안


난 그녀의 주위를 빙빙 겉돌기만 할 뿐


말 한마디 제대로 못 붙이고 있었다.



뭔가 좋은 빌미가 없을까?


내가 연극부에 가입할 동기가 될만한 일.


혹은 그녀가 날 필요로 할만한 일.



.......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나.



일주일을 그렇게 보내고 2주차 첫 번째 수업.


난 그녀의 오른쪽 대각선 뒷자리에 앉아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 20분 정도 가만히 있어보니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배알도 없는 놈....


말 한 마디 터프하게 붙이면 끝날 일을


왜 이렇게 끙끙 앓고만 있니.


그냥 가서 말하는 거야


‘저, 지난번에 말했던 연극부 말이에요


견학이라도 한 번 해볼 수 있을까요?’


이정도면 되는 거 아냐.


그래, 당당하게 가서 말하는 거야!



그리하여 10일간의 고심 끝에


난 그녀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

(현재 용기수치 10)



자리에서 일어선 난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보려다


왠지 범접할 수 없는 장벽 같은 것을 느끼고


다시 팔을 오므렸다.

(용기 5)



그래, 부르는 방법이야 어찌됐건


아까 정했던 멘트 그대로 가면 되는 거야.



하지만 내가 말을 걸려고 입을 여는 순간


그녀가 뒤에서 무슨 낌새라도 느낀 것인지


나를 휙 돌아보았다.


그녀를 향해 몸을 쭉 내밀고 있던 난


빼도 박도 못한 채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민아 - 저.... 무슨 일이세요?



아까 어깨를 두드리려다


미처 다 수습하지 못한 오른손은


고양이 발처럼 오므린 채 어깨높이에 들고


허리를 구부린 어정쩡한 폼으로 굳어 버린 난


정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용기 0. 전투불능상태가 되었습니다)



짧은 침묵의 시간 동안


메마른 한 줄기 바람이


생명을 잃은 낙엽 한 뭉치를


발치에 스산하게 흩뿌리며 지나가


긴 꼬리를 끌고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기억 - ..... 무슨 일 없으세요?



동문서답(東問西答).


이게 무슨 북치고 방귀 뀌는 소린가.



민아 - .......네.


기억 - ..... 다행이네요.



그리고 난 다시 자리에 앉아버렸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죽고 싶었다.


그대로 강의실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찧고 가슴을 쥐어뜯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교단에 뛰어 올라가


‘프레임 댄스~!!!’를 외치며


몸에 기름이라도 뿌리고 싶은 그 기분.



그냥 ‘예, 지난번에....’ 라고 하면 될 걸


‘무슨 일 없으세요?’


그리고 뭐가 또 다행이야 다행은...



그렇게 부족한 숫기 탓으로 인해


난 2주를 그냥 넘기고 말았다.


그동안 얻은 소득이라고는


‘뻘쭘함이란 어떤 것인가?’ 에 대한 감상 뿐.




이후, 주말이라는 긴 고뇌의 시간 동안


백만 일흔 가지 시뮬레이션을 통해


내가 도출해낸 해결책은 몹시도 간단했다.



==연극부에 가서 가입원서를 쓰자.==



과연 그러했다.


연극부가 개방 되어있는 동아리인 이상


그녀를 통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추천인 아이디를 쓴다고


2000원 상당의 포인트가 적립되는 것도 아니고


30명만 꼬셔서 가입시키면


포인트만으로 스페셜 세트를 구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서 만나면 될 것 아닌가?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지?



곧장 결행을 다짐한 난


월요일 오후 한적한 시간에


그녀와 함께 갔던 연극부 연습실을 찾았다.



‘퉁퉁.’


기억 - 실례합니다~.



문의 두께나 무게를 실감하게 하는


육중한 노크소리에 새삼 놀라며


연습실 안으로 들어섰을 때


날 맞이한 건 예전의 한산한 분위기뿐이었다.



보통 이렇게 아무도 없으면


그냥 돌아 갈만도 하건만


처음 오는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에


난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선선한 바람에 여유롭게 흔들리는 암막(暗幕).


과거의 부산했던 상황을 대변하는 듯


이곳저곳에 널려있는 자잘한 소품들.


조금 묵은 냄새가 나는 마루바닥과 천장.



셋 다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들이지만


어쩐지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내 방도 어둡고, 너저분하고, 묵은 냄새가 나기 때문일지도.)



특히 모서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두 개의 거대한 거울의 벽은


나를 비롯한 방 전체를 끊임없이 복제해


어지러운 환상을 만들어냈다.



이곳이 내가 있는 곳일까


아니면 거울 한 장 너머가 내가 있는 곳일까.


어쩌면 지금 생각하고 있는 난


방금 전 생겨난 허상들 중 하나가 아닐까.



난 종종 이런 환상에 사로잡힌다.


나의 존재, 그리고 세상의 경계에 대한


비현실적인 망상들.



-난 정말 살아있는 걸까-



한참동안 끝없는 더미(Dummy)의 바다 속에 빠져들던 난


자아가 희미해지는 듯한 현기증을 느끼며


거울 속에서 빠져나와


벽을 등지고 기대 앉았다.



기억 - 후우...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환상들을 뱉어내듯


긴 한숨을 뿜어대며


천장에 어른거리는 암막의 그림자를 바라보던 중


누군가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 - 아....안녕하세요?


기억 - 예. 안녕하세요.



벽 모서리에 끼어있는 듯한 자세로 기대있던 난


조금 자세를 고쳐 앉으며 상대의 인사를 받았다.



회색 계통에 깔끔한 정장을 입은 남자.


조금 유약해 보이는 인상에


검고 짙은 눈썹과 선명한 쌍꺼풀이 유독 눈에 띄는


상당한 미남형 얼굴이었다.


단정한 스타일에


제법 찰랑거릴 정도로 기른 머리는


적어도 그가 나와 동갑은 아니라는 걸 대변해주었다.



처음에 일어설 타이밍을 놓쳐버린 난


여전히 한쪽 구석에 앉아있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내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들고 있던 악기 케이스 같은 걸 구석에 내려놓고


주변에 있는 소품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누군지도 안 물어보나?


하긴, 그냥 자기가 모르는 부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뭐 동아리장이라도 오면 물어봐 주겠지.



결국 또 마냥 기다리는 모드로 돌아선 난


바닥에 앉아있기는 좀 어색하겠다는 생각에


의자 하나를 가져다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


라는 말을 실감하게 하듯


연극부실에 사람이 제법 모여들었을 때도


나에게 인사 이상의 말을 걸어준 사람은 없었다.



그러던 중,


가장 연로해 보이면서도 한 자리 하는 것 같은


사장님 스타일의 인물 한 명이 부실에 들어섰다.



?? - 하아~이 에브리브리브리바디.



나의 기대에 부응하듯


그는 등장과 동시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화려한 발음을 구사해 보이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부실 안을 한 번 쭉 돌아보았다.



?? - .......



그러던 중 나와 눈이 마주친 그의 미간에


미묘한 주름이 잡혔다.


‘으잉?’ 이라고 묻는 듯한 그 표정.



잠시 고심하던 그는


최초에 들어왔던 남자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 안군아, 저기 있는 사람은 누구냐?


?? 

- 예? 형도 모르는 사람이에요?


전 나이가 좀 있어 보이기에


군대갔다가 온 옛날 멤버일 거라 생각했는데....



?? - .....엥?



잠시 대화가 멈춘 순간


주변에 있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몰렸다.


그들은 눈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넌 대체 누구냐!’


‘지구에 온 목적이 뭐야!’



....... 이거 대략 좋지 않다.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어설프고


그냥 입 다물고 있을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고...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


당당하게 들어와서 버티고 있었던 게 실수다.



?? - 안녕하세요~!



그 때, 익숙한 목소리가


대치상태 한복판으로 난입해왔다.



‘헬프 미!’



기회는 이 때뿐이다 라는 마음으로


강렬한 구원의 마음을 담은 눈빛을


문 쪽으로 쏘았을 때


마침 그녀가 날 바라봐 주었다.



민아 - 앗?! 여긴 웬일이세요?



그녀는 반가움 반, 놀라움 반인 표정으로


부실 안으로 쪼르르 달려 들어왔다.


그녀가 내게 알은척을 하자


사람들은 조금 경계를 풀며 물었다.



?? - 민아야, 아는 사람이야?


민아 

- 아, 네. 지난번에 말씀드렸었잖아요.


발표수업 때 같이 연극한다고 했던....



?? - 난 또.... 예전에 그 인간들인 줄 알았네.


민아 - 그런 사람 아니에요.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사람들은


곧 그녀에게 날 소개해주길 요청했다.


..... 결국 원하던 바는 성취했군.



민아 - 아, 그래요. 그러니까.... 이 분은....



난 그녀가 간단한 소개를 해주길 기다리며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그녀의 다음 말은 언제까지고 이어질 줄 몰랐다.



민아 - 에... 그러니까.... 예전에 저랑 발표수업을 같이 했던...



한참 만에 또 몇 마디를 꺼내는 그녀.


의외로 말에 뜸을 들이는 스타일인가 보네.


전혀 몰랐었는데...



민아 - 음..... 실례지만.... 이름이 뭐였죠?



두둥.....


그거였나.


이름을 까먹었던 건가?


아니지, 


애당초 내가 가르쳐 준 적도 없었구나.


그래도 그렇지....


그동안 이름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단 말이야?


우리 사인 이것 밖에 안 되는 거였어?



기억 - .....기억입니다.


민아 - 아, 네. 그리고.... 몇 학번이셨죠?


기억 - ....00학번 신입생입니다.



순간 연습실은


몹시도 강렬한 충격에


일순간 시간의 흐름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민아 - .....정말 실례지만..... 몇 수?


기억 - 현역입니다.


?? - 그럴 수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전혀 예상 못했던 실험결과를 얻은 과학자들처럼


‘정말일까?’ ‘고등학교를 꿇었나?’


따위의 말을 조심스레 주고받았다.



민아 - 연극부엔... 가입하러 오신 거예요?


기억 - 아... 우선은 견학이라도 해보려고요.


민아 

- 음, 그러세요. 마침 공연 준비 중이라


보면 재미있을 거예요.



기억 -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사람들은


각자 역할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 반은 성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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