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훈민정음 상주본 미스터리④] 문화재청·실소유주 '치킨게임'…중재가 답이다

기사입력 2019.09.20 05:00

국보급 고서로 추정되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언제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까. 대법원도 풀지 못한 문화재청과 소장자 배익기 씨의 팽팽한 대립 속 상주본은 11년째 자취를 감췄다. /경북 상주=이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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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하 상주본)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11년. 상주본은 공개 직후 복잡한 사건들이 얽히고설키며, 소장자인 배익기(56) 씨만 아는 곳에 감춰졌다. 상주본은 과거 문화재청 감정평가에서 '1조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은 국보급 고서다. 지난 7월 대법원은 상주본 소유권이 문화재청에 있다고 최종 판단했다. 그러나 배 씨는 여전히 상주본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더팩트>는 오는 10월 9일 한글창제 573돌 한글날을 앞두고 상주본 사태 11년간의 기록과 의문점을 파헤치고, 꼬일 대로 꼬인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해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권한 가진 제3자가 꽉 막힌 사태 풀어야"

[더팩트ㅣ경북 상주=허주열 기자] 현재 훈민정음 상주본의 소유권은 국가에 있다. 법원이 소유권을 인정한 고 조용훈 씨가 2012년 5월 7일 문화재청에 상주본을 기증했기 때문이다. 실소유자인 배익기 씨는 이를 납득하지 못 하고 있다. 사태가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대법원이 지난 7월 11일 배 씨가 국가의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제기한 청구이의의 소를 기각하면서 '상주본은 국가 소유'라는 것이 재확인됐다. 하지만 배 씨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그는 조 씨와의 민사재판 이후 열린 형사재판에서 절도죄가 '무죄'로 최종 확정된 만큼 훔치지 않은 상주본을 내놓을 수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2015년 3월 배익기 씨 자택 화재로 상주본 일부가 훼손된 모습. /배익기 씨 제공

◆지지부진한 당사자 간 담판

지난 7년 간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된 가운데 최근 대법원 판결을 기점으로 문화재청은 상주본 회수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17일 문화재청은 배 씨를 만나 "문화재 보존상태가 많이 우려된다"며 "대법원 판결로 상주본 소유권이 국가에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돼 조속한 반환을 재차 요구하며, 계속해 반환을 거부할 경우 법적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을 담은 반환요청 문서를 전달했다.


특히 문화재청은 "계속해서 은닉하고 문화재를 훼손할 경우 문화재보호법 제92조(손상 또는 은닉 등의 죄)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며 "상주본 회수를 위해 지속적으로 배 씨를 설득해 나가겠지만, 계속해서 반환을 거부할 경우에는 강제집행 등 법적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통보하기도 했다.


이후 두 달가량 지났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문화재청은 강제집행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고 했지만, 가장 중요한 상주본 환수 가능성을 검토하며 구체적 계획은 확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난 10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반환문서를 배 씨에게 전달한 이후에도 수차례 배 씨를 찾아가 설득했고, 아직도 설득하는 과정에 있다"며 "(상주본 회수) 열쇠는 배 씨가 쥐고 있어 아직 특별한 변화는 없다. 다만 공무원들은 법과 원칙에 따라 일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문화재청은 앞서 세 차례 압수수색을 진행했지만 상주본을 찾지 못했고, 배 씨는 구속돼 1년가량 수감생활을 했음에도 상주본을 내놓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배 씨를 구속하고, 압수수색을 한다고 하더라도 상주본을 찾을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인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배익기 씨 등을 증인으로 불러 상주본 사태를 따져볼 계획이다. /뉴시스

하지만 최근 문화재청과 배 씨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려고 했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배 씨가 상주본의 현 상태에 대한 사진도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강제집행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했다.


안 의원은 통화에서 "한글날(10월 9일)까지는 (상주본 사태를) 처리해야 한다고 문화재청에 의견을 전달했다"며 "이제는 대화와 설득보다는 법과 원칙대로 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고, 문화재청장(정재숙)도 긍정하고 있어 강제집행 수순을 준비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한 안 의원은 배 씨를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불러 다시 한 번 이 문제를 따질 계획도 밝혔다. 그는 "이번 국감에 배 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상주본 사태에 대해 다룰 예정"이라며 "법원에서 국가 소유로 판단한 상황에서 법을 초월한 생각을 가진 자를 상대로 더 이상 설득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을 강조했다.


배 씨는 문화재청을 상대로 재차 상주본 소유권을 다투는 소송을 진행한다는 방침이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는 "기존에 소송을 맡아 왔던 변호사와 (상주본) 지분을 요구하는 변호사 사이에서 어디에 소송을 맡길지 고민 중"이라며 "승산이 없는 소송은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준비 중"이라고 말을 아꼈다.


이어 그는 "상주본 사태 진상규명을 위해 청문회를 열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국회의 관련 상임위 위원장인 안 의원이 더 이상 중재 의사가 없음을 밝힌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청문회가 열리기는 어렵다. 사실상 배 씨도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버티고 있는 셈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왼쪽)과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70호 간송본 복사본. /문화재청 누리집

◆중재위 통한 해결 제안도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국보 70호)에 버금가는 문화재로 추정되는 상주본은 영영 자취를 감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화재청이 강제집행 카드를 쉽사리 꺼내지 못하는 것도 실효성과 배 씨의 극단적 선택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보인다.


이에 원광호 훈민정음보존회 회장(국회 헌정회 대변인)은 중재위원회를 통한 상주본 사태 해결을 주장했다.


원 회장은 "지금 상황에선 결론이 나올 수가 없다"며 "사법부의 조정 시도도 실패한 만큼 상주본의 공개와 올바른 보존을 위해선 국무총리나 대통령이 나서 조정 역할자를 선정해 조정 권한을 주고, 권한을 위임 받은 조정자가 문화재청과 배 씨 양 측의 요구를 검토 및 조정해 합리적 조정안을 제시해 사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상주본 실물을 확인한 유일한 전문가인 임노직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 관장도 "문화재청에서도 인정할 수 있고, 문화재 환수에 참여한 경험이 풍부한 단체에서 열쇠를 쥔 배 씨의 의견도 일부 수용해 중재에 나서면 자연스럽게 상주본 상태를 확인하고, 감정 평가로도 이어져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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