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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초점] 성폭행 후 왜 'ㅎㅎ'?…이제 '피해자다움'은 없다

기사입력 2019.09.12 00:01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 2월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비서성폭행 관련 강제추행 등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법정구속이 되어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한샘 성폭행' 유죄 이어 안희정 실형 확정… "성인지 감수성 시대"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대법원이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실형을 받은 안희정(54) 전 충남지사의 원심을 확정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 김지은 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반면 2심은 김씨의 진술 신빙성을 인정해 1심을 뒤집고 징역 3년 6월을 선고했다. 대법원이 지난 9일 2심 판결을 확정하며 1년을 넘긴 긴 싸움 끝에 안 지사의 유죄로 결론났다.


안 지사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4일 전 교육팀 직원이 여성 신입사원을 성폭행한 이른바 '한샘 성폭행 사건' 1심 재판부도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다. 이들 사건은 상하관계가 분명한 업무환경에서 발생한 성범죄라는 공통점이 있다. 범행 전후 피해자의 태도를 두고 공방이 있었다는 비슷하다. 전문가들은 성범죄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는 '성인지 감수성' 시대가 도래했다고 입을 모았다.


◆'피해자다운 태도'는 무엇일까


안 전 지사의 정무비서였던 김씨는 지난해 3월 JTBC '뉴스룸'에서 "안 전 지사가 지난해 6월~올해 2월 약 8개월간 4차례 성폭행하고 수시로 성추행했다"고 폭로했다. 이튿날 김씨는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 등 혐의로 안 전 지사를 고소했으나 누리꾼의 반응은 차가웠다. 김씨가 범행을 당한 후에도 "넹ㅎㅎ", "(스위스 출장 후) 릴렉스와 생각할 시간을 많이 드린 것 같아 뿌듯해요. 정말 고생많으셨어요ㅜㅜ" 등 비교적 다정한 문자를 주고받은 사실이 알려져서다. 또 당시 김씨 주장대로 위력에 의한 성범죄 피해를 입으며 해외 출장에 동행하는 등 비서 업무를 차질없이 이행한 점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한샘 성폭행 사건 역시 유사한 양상이다. 지난 2017년 피해자 A씨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교육팀 직원 박모(32) 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박씨는 범행이 발생한 2017년 1월 14일 새벽 전후 A씨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내용을 공개했다. 해당 대화에서 A씨는 "피곤하지 않냐"는 박씨의 질문에 "넹 괜찮은뎅", "헐, 강철 체력" 등 무덤덤하게 대답해 "피해자답지 않다"는 시선에 시달렸다. 같은 해 2월 19일 A씨가 박씨에 대한 고소를 취하한 것이 알려지자 "역시 꽃뱀이었다"며 2차 가해에 시달렸다. 지난 6월 한 언론매체에 따르면 A씨는 박씨에게 "합의서 받을 때만 연락이 안된다"는 등 고소 취하를 종용하는 메시지를 취하 직전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답지 못한 태도'를 문제삼은 건 여론 뿐만이 아니었다. 1997년 한 방송사는 성폭행 피해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수치스러운 삶 대신 죽음을 택한 여대생의 선택은 정조 관념이 희박해진 요즘 세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도했다. 피해를 입은 후 극심히 괴로워하는 모습이 '피해자다운 태도'라는 인식은 약 20년이 흐른 후 안 전 지사의 1심에서도 드러났다. 지난해 8월 1심 재판부는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범행 현장에서) 문을 열고 나가는 등 최소한의 회피와 저항을 할 수 있었는데도 피해자는 달랐다. 사건 이후에도 피고인이 좋아하는 순두부 식당을 찾아주고 아침식사를 하는 등의 정황을 볼 때 피고인을 처벌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은 김씨가 '피해자답지 않아서'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두 사건 피해자 모두 문제제기시 인사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위치라 성범죄 고통을 호소하는 행위를 억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안 전 지사에게 피해를 입은 김씨는 본연의 업무에 순응하는 모습으로 나타났고 한샘 피해여성은 범행 이전보다 자발적으로 먼저 대화를 거는 횟수가 확연히 줄어드는 것으로만 표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들처럼 한 조직내 발생한 성범죄 피해자의 태도는 우리의 고정관념 속 피해자 모습과 다를 수 있음을 감안해 감수성있게 바라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법원 전경/ 사진=대법원 제공

◆안희정 판결 "한국 사법부도 성인지 감수성 시대"


검찰 측 항소로 진행된 안 전 지사의 2심 재판부는 김씨의 진술 신빙성을 근거로 2017년 8월 이뤄진 강제추행 혐의를 제외한 모든 성폭행 혐의를 유죄로 봤다. 6일 대법원이 징역 3년 6월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등에 5년간 취업제한 명령 등을 선고한 2심 판결을 유지하며 실형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안 전 지사의 2심 유죄 판단이 옳다고 판단하며 성인지 감수성을 직접 언급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을 심리할 때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하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4월 이후 2번째로 대법원에서 인용된 것이다.


A씨의 재고소로 진행된 한샘 성폭행 사건의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권희 부장판사) 역시 가해자 박씨의 강간 혐의를 인정하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자신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성관계를 한 구체적 경위를 일관되게 진술했다. (피고인은) 피해자와 인적 신뢰와 친분을 이용해 성폭행을 한 죄질이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문제가 된 범행 전후 두 사람의 대화에 대해서도 "피해자가 범행 당시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사회 초년생으로서 사내 교육 담당자인 박씨에 이성적인 호감을 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위계상 간음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와 달리 단순 강간죄가 적용됐지만 두 사람의 업무적 상하관계가 고려됐다.


한샘 가해자의 경우 아직 1심이라 형이 확정됐다고 보기 힘들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성인지 감수성을 명시한 안 전 지사의 대법원 판례는 한샘 성폭행 사건을 포함해 앞으로의 성범죄 재판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조수진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는 10일 CBS '김현정의뉴스쇼'에서 "정반대로 선고한 1·2심 중 대법원은 2심 결론을 채택했는데 그 기준으로 성인지 감수성을 제시했다. (대법원 선고를 보며) 시대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태연 태연법률사무소 변호사 역시 이번 대법원 판례는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업무환경에서 발생한 성범죄 사건 심리에 중요한 척도가 될 거라 봤다. 김 변호사는 "실제로 상급자에게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들이 재판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왜 가해자와 아무렇지 않게 밥 먹었냐, 커피마셨냐'다"라며 "대법원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했으니 앞으로 하급심 재판부도 성범죄 사건을 다룰 때 적극적으로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ilraoh_@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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