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구의 상암토크] 삼성증권, ‘뚱뚱한 손가락’ 탓만 할 것인가

기사입력 2018.04.19 05:00

삼성증권이 최근 우리사주 배당금을 주당 1000원 대신 자사주 1000주를 지급하는 황당한 '팻핑거(fat-finger) 오류' 사고를 일으켜 논란이 되고 있다.

신뢰 먹고사는 금융권에 '팻 핑거' 심각 ...'아너코드' 도입해야

[더팩트ㅣ김민구 기자] 타임머신을 타고 128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영국 런던 금융시장은 1890년 11월 14일 날벼락 같은 소식으로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 세계 최대 은행이던 영국 베어링브러더스가 파산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파산 위기 원인은 아르헨티나 부실채권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는 주요 수출품목인 밀이 흉작인데다 심각한 정치적 불안정이 이어졌다. 아르헨티나 사태로 베어링은행이 보유한 아르헨티나 국채 864만파운드(요즘 가치 약 2조3000억원) 상환이 불투명해졌다.


아르헨티나 국채가 휴지조각이 되면 자칫 ‘베어링발(發)’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다행히 잉글랜드 은행은 물론 프랑스와 러시아가 베어링 지원사격에 나서 글로벌 위기라는 파국은 비켜갔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하면 비극은 계속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백척간두에 서 있다 기사회생한 베어링은 105년 후인 1995년 2월 또다시 세계경제를 뒤흔들었다.


베어링은행은 1995년 2월 23일 닉 리슨 이라는 직원의 무모한 투자로 파산했다. 그는 당시 일본 증시가 상승할 것으로 보고 선물(先物) 시장에서 거액을 투자했다. 그러나 그 해 일본 고베 대지진으로 도쿄 닛케이지수가 폭락해 13억 달러(약 1조4000억원)를 날렸다. 233년 전통을 지닌 베어링은 직원의 판단 착오로 1995년 2월 26일 문을 닫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글로벌 경제를 살펴보면 베어링과 유사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일본에선 2005년 미즈호증권 직원이 61만엔(약 600만원)짜리 주식 1주를 팔려다 착오로 이 주식 61만 주를 1엔(약 10원)에 내놓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이 여파로 도쿄 증시는 폭락했고 미즈호증권은 엄청난 양의 주식을 회수하기 위해 약 400억엔(약 4000억원)의 손해를 봤다.


위 사례처럼 직원이 한 순간 방심해 ‘손가락’을 잘못 눌러 회사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을 ‘팻 핑거(Fat Finger)'라고 부른다. ‘뚱뚱한 손가락’ 이라는 뜻의 이 용어는 증권 매매 때 주문 정보를 실수로 입력해 큰 손실을 초래하는 것을 뜻한다. 손가락이 굵어 주문 과정에서 가격 등을 잘못 입력해 증권사나 투자자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사람 손가락 너비는 평균 2㎝ 정도다. 이는 컴퓨터 키보드 너비(약 1.9㎝)와 거의 일치한다. 이 때문에 팻 핑거는 발생하기 마련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한번 냉정히 생각해 보자. 팻 핑거가 정말 직원 손가락의 실수로만 봐야 할까. 실수가 아닌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결과물일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팻 핑거 원인이 기층에 깔려 있는 인간의 어두운 욕망이라면 신뢰를 먹고 사는 금융권으로서는 치명타나 다름없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저서 ‘국가(Platonis Rempublicam)’ 2권에 나오는 ‘기게스의 반지(Ring of Gyges)’는 가공의 마법 반지다. 이 반지는 사람이 끼면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다. 기게스의 반지를 갖고 있다면 누구나 나쁜 마음을 갖게 될까. 이에 대해 플라톤의 형 글라우콘은 이렇게 설파한다. “기게스의 반지를 끼고도 도덕적으로 행동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인터넷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된 요즘 기게스의 반지는 있을 수 없다.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CCTV가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시대가 아닌가. 팻 핑거는 남이 보지 않는 가운데서도 인간의 탐욕을 억제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에도 홀로 있을 때조차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을 하지 않고 삼가라는 ‘신독(愼獨)’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팻 핑거에 대한 해법을 미국의 유명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에게 귀동냥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애리얼리 듀크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의 저서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The Honest Truth about Dishonesty)’에서 사람들은 도덕적 동기부여와 경제적 동기부여에 의해 행동하는데 다른 사람이 자신을 정직한 인물로 봐주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속여 이득을 얻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두 가지 동기부여가 충돌하면 ‘인지적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이 작동하고 사소한 부정행위를 저지른 후에 그것을 합리화하려는 과정을 거친다는 얘기다. 결국 인간은 △범죄행위를 통해 얻게 되는 이득(기대편익) △발각될 가능성(기대비용) △체포되었을 때 예상되는 형량(기대비용) 등을 놓고 끊임없는 갈등을 빚는다는 얘기다. 범죄 충동을 억누르려면 적발 확률을 높이거나 형량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최근 논란이 된 삼성증권 팻 핑거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삼성증권 직원이 우리사주 배당금을 주당 1000원 대신 자사주 1000주를 지급하는 황당 사고를 일으킨 데 그치지 않고 일부 직원들은 잘못 배당된 주식 중 500만주 가량을 급히 팔아치워 주가급락 사태를 초래하는 도덕적 해이를 보였다.


그릇된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는데 매번 '시스템 부재' 타령만 할 수는 없다. 필요하면 아너코드(Honor Code:명에규율)를 도입해 팻 핑거를 제도적으로 막는 해법도 고민해야 한다. 아너코드는 구성원이 엄격한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갖추고 명예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경우 강력한 처벌을 받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미국에서는 일부 대학이 아너코드를 도입해 실천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 한국 금융권이 아너코드 같은 윤리강령을 도입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작은 구멍으로 거대한 댐이 무너지듯 개개인들의 작은 거짓말과 사소한 부정행위가 전체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것은 시간문제다.


삼성증권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오각성할 필요가 있다. 삼성증권은 팻 핑거 재발 방지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면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기 바란다. 베어링은행과 미즈호증권의 쓰라린 교훈을 잊지 말라는 얘기다 .







gentlemin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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