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 대신 열정 가수로, '34년 갈색추억'

풀빵닷컴N 2019/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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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KBS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 데뷔, 2년 만에 가수 변신 후 외길 인생

한혜진(53·본명 한명숙)은 색깔이 강렬한 가수다. 그는 서정적이고 애잔한 느낌을 주는 '갈색 추억'을 통해 이름을 알렸지만, 이내 분위기를 180도 바꾼 빠른 댄스곡 '너는 내 남자'로 파워 넘치는 무대를 이끌어 대중을 사로잡았다.


그는 '파격'이란 단어가 적절할 만큼 노래는 물론 다양한 패션 스타일로도 1990년대 당시 가요계 트렌드를 바꿨다. '꽉 낀 청바지'로 시작하는 섹시코드 가사는 보석이 반짝이는 수제 청바지의 현란한 의상과 멋진 궁합을 이뤘다. 출발부터 기존 트로트 가수들과 '차별화 존재감'을 분명히 했다.


한혜진은 85년 KBS 한국방송공사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짧은 연기활동을 마감하고 가수로 변신했다. 87년 MBC 강변가요제에 출전해 '사랑의 신이여 내 곁에'로 입상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개성 강한 허스키 보이스를 살리면 대성할 수 있다는 주변의 조언에 진로를 바꾸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스러움과 보이시한 매력을 함께 갖고 있는 가수다. 한혜진은 "애초 연기 외엔 단 한번도 노래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가수가 된 것도 다 팔자소관"이라고 말했다. 한혜진의 '연예계 34년 갈색추억' 여정을 되짚어본다. 스페셜 인터뷰는 지난 19일 서울 충무로 남산한옥마을 근처 카페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제 성격이요? 쾌도난마예요." 한혜진은 "뭐든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라며 오랜 연예계 생활을 반추했다. 스페셜 인터뷰는 지난 19일 서울 충무로 남산한옥마을 근처 카페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새롬 기자

-TV 공채 탤런트 출신인데 지금은 배우로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연기와 노래를 병행하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둘 다 하는 건 어느 한쪽도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노래 좀 부르다 잘 안되면 다시 연기자로 돌아간다는 안이한 생각으론 성공 못하죠. 저는 성격이 쾌도난마예요. '도' 아니면 '모'이고, 뭐든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죠. 처음부터 두 마리 토끼를 쫓아가는 '어설픈 욕심'을 포기했어요. 한 마리라도 제대로 잡겠다는 게 제 방식이거든요. 남들보다 좀 늦게 출발했지만, 빨리 따라잡고, 지금 앞서가는 비결은 아닐까요, 하하하.


한혜진은 1985년 KBS 공채 11기로 출발해 드라마 '산유화'(경상도 사투리 여대생 미란 역)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형사25시' '욕망의 문' '드라마게임' 등에 출연하며 착실히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우연히 음악학원에 피아노를 배우러 갔다가 목소리 재능을 발견하고 가수로 방향을 틀었다. 89년 '가슴 아픈말 하지마'로 데뷔한 뒤 당시 고 김인배 KBS 악단장의 권유로 트로트에 입문했다.


-아무리 유명한 작곡가의 곡이라도 노래는 여러 변수가 맞아야 히트하게 돼 있다. 데뷔 초기엔 많이 힘들었다고 들었다.


전영록 선배님이 주신 데뷔 곡은 장르가 저한테 맞지 않았어요. 큰 기대를 걸고 연기자의 길을 포기 했기 때문에 한동안 절망감이 컸어요. 그러다가 1993년 클래식 스타일의 '갈색추억'을 부르게 됐는데, 곡은 좋지만 뭔가 트렌드에 안맞다는 인식이 있어 기대를 안 했죠. 그 무렵엔 정통 트로트에서 약간 변형된 '큰소리 뻥뻥'(송대관) '세상은 요지경'(신신애) 같은 노래가 인기였어요. 그런데 알고 보면 저를 가수 한혜진으로 불릴 수 있게 해준 인생곡이 된 셈이에요.


그는 전영록이 작사 작곡한 '가슴 아픈 말 하지마'로 출발했다. 전형적인 록 장르였다. 주목을 받지 못해 고군부투하던 그가 새로 선택한 곡은 서정성 짙은 발라드 트로트 '갈색추억'(임종수 작곡)이다. 한혜진은 예상을 뛰어넘는 히트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한다. 이 곡은 '길거리차트'(리어커)를 휩쓸며 트로트 신인가수로는 드물게 50만장 이상 음반 판매고를 올린다. 당시는 김수희 주현미 김지애 심수봉 등이 하나의 앨범 수록곡 중 한꺼번에 3~4곡씩 히트하며 독식하던 시기다.



2012년 6살 연상의 사업가 허모 씨와 재혼한 한혜진은 "사업적으로 한 차례 풍파를 겪으며 부부 간 신뢰는 더 돈독해졌다"면서 "남편이 집에서는 요리도 하고 살림도 하는 자상하고 가정적인 성격"이라고 말했다. /이새롬 기자

-'가수 한혜진'을 열정의 가수로 각인시키는 노래를 꼽는다면 역시 빠른 리듬의 댄스곡 '너는 내 남자' 아닌가?


네, 그렇죠. 제 이미지를 180도 바꾼 계기가 된 곡이에요. 너무 강렬해서 이 곡이 히트한 뒤 한동안 후속곡이 묻히는 아픔도 맛봤고요. 어쨌든 이 노래를 부르면서 제 모습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리셋된 셈이에요. 최대한 야하고 강렬하게 무대를 맘껏 휘젓고 싶어 일부러 빠른 춤과 율동을 배우고 익혔죠. 상반신을 탈의한 근육질의 남자 댄서들과 무대 위에서 어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꽉 낀 청바지 갈아입고 거리에 나섰다/ 오늘 따라 보고 싶어 너무나 보고 싶어/ 그 카페를 찾아갔지만 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중략)' 한혜진은 이 노래를 부른 뒤 단번에 '센언니' 이미지로 탈바꿈했다. 현란한 춤과 함께 등 패인 드레스와 보석 액세서리를 데커레이션한 가죽 재킷을 등장시켜 패션 트렌드까지 주도했다. 기존 자신의 노래 '갈색추억'(93년)과 '서울의 밤'(2002년)에서 보여준 애잔한 느낌 대신 강렬함으로 차츰 무장해 나갔다.


-'너는 내 남자' 직전에 히트한 '서울의 밤'은 원래 나훈아와 주현미 등 유명 선배가수들이 불렀던 곡 아닌가?


맞아요, 제가 '갈색추억' 후속으로 연달아 히트에 성공한 노래라서 지금도 애착이 가는 곡이에요. 아버지가 시골 과수원 판 돈을 보태 만든 앨범 타이틀곡이기도 하고요. '갈색추억' 이후 워낙 자신감이 충만하던 시기여서 감히 그런 용기를 낸 거죠. 웬만한 배짱이 아니고선 대선배들도 포기한 곡을 신인이 덤벼들기가 쉽지는 않잖아요. 노래를 낼 당시 '서울'이란 단어가 들어가면 무조건 히트한다는 속설을 믿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좀 무모한 구석도 없지 않아요.


'서울의 밤'(박성훈 작곡)은 1999년 발매된 한혜진 4집 타이틀곡으로 실린 곡이다. 탱고 디스코 버전으로 뜨거운 인기를 불러모은 노래다. 이미 주현미가 '명동야곡'(85년)으로, 진승화가 '서울의 밤'(86년), 그리고 나훈아가 자신이 직접 가사를 다시 쓴 '이별의 탱고'로 불렀다. '서울의 밤'은 이밖에도 노고지리, 이선희, 문주란, 석미경, 목화재매 등이 같은 제목의 노래를 불렀지만 한혜진만큼 대중적 조명을 받지 못했다.



"신곡 준비하느라 좀 바빴어요." 오는 9월 1일 KBS1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첫 선을 보일 신곡 '그대가 그리워라'는 세미 트로트보다 약간 빠른 팝 트로트 쪽에 가깝다. 사진은 가요무대 한 장면. /아랑엔터테인먼트, 더팩트 DB

-오랜만에 신곡을 준비하느라 바쁜 날을 보냈다고 들었다. 어떤 곡인지 궁금하다. 언제부터 들을 수 있나?


'그대가 그리워라'라는 곡이에요. 아직 공개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알고 계시는 걸 보면 강 기자님은 예나 지금이나 전통가요 쪽에 참 애정이 많은 것 같아요. 대중매체와의 소통창구에 한계가 있는 우리 트로트 가수들한테는 항상 큰 힘이 돼주시는 분이세요. 이번 곡 첫 무대는 KBS1 '전국노래자랑'(9월1일 방송)을 통해 소개될 예정이에요. 지금껏 여러 장르를 폭넓게 오가며 다양하게 변화를 시도해봤는데 요즘 대세 트렌드인 세미 트로트로 되돌아갔죠. 행사 무대에서부터 벌써 반응이 생기고 있어요.


국내 전통가요는 크게 이미자 주현미 문희옥 김용임으로 이어지는 정통 트로트가 한 축이고, 또 하나는 발라드풍의 잔잔하면서도 한 템포 빠른 세미 트로트로 분류된다. 한혜진은 최진희 김수희 스타일의 계보를 잇고 있다. 다만 그동안 '너는 내 남자' '정말 진짜로' 등 빠른 템포의 파워풀한 댄스곡도 많이 불러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새로 선보이는 이번 신곡 '그대가 그리워라'는 세미보다 약간 빠르고 강렬한 팝 트로트 쪽에 가깝다.


-늘 유쾌한 엔돌핀을 내뿜는 가수로 가요계에 정평이 나 있다. 허스키 보이스 외에 자신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보기완 달리 저는 보이시한 스타일이에요. 사나이 같은 의리도 있고요. 한번 꽂히면 앞 뒤 안보고 쭉 고(Go)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여장부라고 이해하시면 정확해요. 이 또한 알고 보면 저만의 매력인 셈이에요. 무엇보다 강 기자님한테 '엔돌핀을 만드는 가수'로 인정받으니 갑자기 행복해지네요. 누구한테나 살갑게, 편하게 다가가려 노력하죠. 그런데 실제론 믿음이 쌓이기 전까진 쉽게 정을 주지 못하는 편이고 낯을 좀 가리는 편이죠. 얼핏 O형으로 보시는데 사실은 B형이에요.


한혜진은 평소 내면을 중시하는 진중한 성격을 선호한다. 실속 없이 오버하는 호들갑스러움을 가장 싫어한다. 때문에 인간관계에서도 한번 마음을 주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해가며 상대방을 끝까지 배려하는 스타일이다. 끊고 맺는 게 분명해 가요계 선배들한테 듬직한 후배로 신뢰받고, 후배들한테 존경을 받는다. 그는 "좋은 언니와 까칠한 언니는 뉘앙스부터 다르다"면서 "무명시절 많은 설움을 겪으면서 선배가 되면 후배들한테 잘해주자고 수없이 다짐했다"고 털어놨다. 1인기획사인 아랑엔터테인먼트(대표 정의한)와 10년째 의리의 한솥밥을 먹고 있다.





"2020년부터 단독 콘서트 출발해요." 한혜진은 "틈나는대로 다른 가수들의 콘서트를 관람한다"면서 아직 못 본 '꼭 봐야할 공연'으로 나훈아 콘서트를 꼽았다. /이새롬 기자

-평소 밝고 유쾌한 그런 이미지 덕분에 개인적 아픔이나 상처는 없어 보인다. 혹시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닌가.


아픔이나 상처가 왜 없겠어요. 그냥 아닌 척 하는 거죠. 첫 결혼 실패 후 많이 힘들었죠. 아무리 열심히 살고자 해도 인연이 닿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돈도 믿음도 사랑도 산산조각이 나면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어요. 일찌감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각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죠. 다행스러운 건 지금의 남편과 만족하며 산다는 거예요. 사랑을 넘어 서로 존경하는 사이거든요. 진솔하고 착한 사람이에요. 다시 태어나도 저는 이분과 결혼할 것 같아요.


한혜진은 2000년 프로복싱 미들급 동양챔피언 김모 씨와 7년 열애 끝에 결혼했지만 9년 만에 이혼했다. 무엇보다 복잡한 금전적 문제 등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이후 6살 연상의 사업가 허모 씨와 2012년 재혼했다. 한혜진은 "사업적으로 한 차례 풍파를 겪으며 부부 간 신뢰는 더 돈독해졌다"면서 "남편이 집에서는 요리도 하고 살림도 하는 자상하고 가정적인 성격"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30년째 활동을 하며 히트곡이 많은 편인데도 아직 단독 콘서트를 하지 않은 가수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마치 꽉 찬 결혼 적령기 처녀한테 왜 시집 안 가느냐고 묻는 듯한 느낌이네요. 사랑만으로 덜컥 결혼하듯, 열정만 있으면 콘서트는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그보다는 좀더 알차게 준비해 완벽한 무대로 관객들을 맞이하는 게 옳다고 믿어요. 지난해 가수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연말 첫 디너쇼를 한 뒤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고 비로소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 내년부터 본격적인 콘서트에 나설 계획이에요. 티켓을 사는 관객들이 결코 후회하거나 아깝지 않을 완벽한 무대로 보답해야죠.


한혜진은 어떤 가수들보다 콘서트에 대한 열의가 높다. 그는 "수많은 스타가수들의 콘서트를 보면서 나라면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는 공부를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마이클 잭슨의 내한공연을 비롯해 머라이 캐리, 휘트니 휴스턴 공연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이승철 이승환 김건모 마마무 에일리 등 객석 점유율이 많은 콘서트도 빼놓지 않고 봤다. 물론 인상적인 장면들은 모두 기억해뒀다. 그는 '꼭 봐야할 공연'(스케줄이 맞지않아 아직 보지 못한)으로 나훈아 콘서트를 꼽았다.



한혜진은 꾸준한 봉사활동을 펼치며 팬들과 '선한 교감'을 나누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서울 중부경찰서와 함께 범죄예방 길거리 캠페인을 벌이는 장면이다. /아랑엔터테인먼트, 더팩트 DB

한혜진은 같은 트로트 장르라도 분위기 있는 노래가 잘 어울리는 가수다. 팬들은 독특한 허스키 음색 못지않게 그가 추구하는 강렬한 색깔을 좋아한다. '갈색추억'과 '서울의 밤'으로 서정성을 강조했다면 '너는 내 남자'의 섹시 트로트로 폭발적인 반전매력을 발산했다.


그는 같은 허스키 보이스라도 중저음에서 하이톤의 고음까지 소화가능하다. 이런 타고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실력이 월등한 가수 축에는 끼지 못해 남들보다 열 배 이상 연습을 많이 하는 노력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항상 좋은 노래, 좋은 무대로 사랑받는 가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경주 출신의 한혜진은 신인 연기자 시절 사투리가 교정되지 않아 배우의 꿈을 포기했다. 새로 시작한 가수 길이 결코 쉬울 리 없었지만 굳은 의지로 입지를 다졌다. 한혜진은 "살아 보니 세상사는 운이 따를 때도 있지만, 결국 스스로 노력한 만큼 결실을 맺게 돼 있더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필자에게는 그의 밝은 미소마저 히트곡 '갈색추억'처럼 애잔하게 버무러져 보였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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