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통진당 소송' 압력 받은 두 판사의 조금 다른 선택

기사입력 2020.12.03 00:00

양승태 대법원 시절 이규진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양형 실장)에 '재판 개입' 연락을 받은 판사들이 사법농단 사건 법정에 잇따라 증인으로 나왔다. /이덕인 기자


재판 개입 시도에 '회피하거나 소신 지키거나'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양승태 대법원 시절 이규진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양형 실장)에 '재판 개입' 연락을 받은 판사들이 '사법농단 의혹' 사건 법정에 잇따라 증인으로 나왔다.


이들은 이 전 실장의 연락 배경에 판사 인사권을 쥔 법원행정처가 있음을 직감했고, 판결 선고를 앞둔 시기 특정 결론을 입에 담은 그의 연락에 불쾌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후 선택은 조금 달랐다.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 처장의 속행 공판에는 박길성 전 광주지법 부장판사(현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가 증인으로 나왔다.


2016년 2월 박 부장판사가 재판장으로 부임한 광주지법 행정1부에는 선고가 두 번이나 미뤄진 해묵은 사건이 있었다.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의원직을 잃은 옛 통합진보당 광주시의회 의원들이 낸 퇴직 처분 취소소송이었다.


이 사건은 2015년 5월 7일 첫 재판에서 변론을 종결하고 같은 해 6월 11일 선고기일이 잡혔지만, 이듬해 1월 14일로 미뤄졌다. 전임 행정1부 재판장은 새로 잡은 선고기일에도 판결을 선고하지 않고 변론을 재개한 상태로 남겨둔 채 인사로 떠났다. 인사 발령 전 맡은 사건을 최대한 마무리 짓고 떠나려는 판사들의 업무 형태와 사뭇 달랐다.


전임 재판장은 지난달 30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박 모 변호사(당시 부장판사)였다. 박 전 부장판사는 법정에서 이 사건 선고를 두 차례 미룬 이유를 해명했다.


첫 연기는 박 전 부장판사의 행정1부 합의부원들이 결론을 내지 못해서였다. 그해 12월 한 차례 변론기일을 더 가진 뒤 2016년 1월 중순으로 선고기일을 다시 잡았다.


박 전 부장판사는 선고를 일주일 앞둔 무렵 이 전 실장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 전 실장은 헌법연구회에서 통진당 사건을 논의했는데 의원직 상실로 결론 났으니 참고해달라며, 기각 판결을 내리기 어렵다면 선고를 미루라는 방법도 제언했다.


이 전 실장은 자신이 회원이기도 한 헌법연구회에서 검토한 결론이라고 말했지만, 박 전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의 결론으로 받아들였다. 검찰이 확보한 '통진당 지방의원 광주지법 행정소송 선고기일 지정 결과 보고' 문건에는 '대법원이 아닌 헌법연구회 커뮤니티 차원에서의 대화로 이끌었음', '헌법연구회 논의 때문에 연락해봤다는 말로 대화를 풀어나감'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선고를 앞둔 재판장에게 특정 결론을 참고하라는 연락은 일선 판사들끼리도 지양하는 일이다. 연락의 주체가 판사 인사권을 쥔 법원행정처라면 사안은 더욱 심각해진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을 앞둔 연차였던 박 전 부장판사는 껄끄러운 감정과 함께 '내 판결이 평가 요소가 되겠구나'라는 심정이었다고 털어놨다.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한 혐의를 받는 임 전 차장 측은 통진당 소송처럼 유명 사건을 맡은 판사라면 누구나 판결이 인사에 반영된다는 고민을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실장의 연락은 재판 개입이 아닌 논의일 뿐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검사와 변호인의 공방을 지켜보던 박 전 부장판사는 선고를 내리지 않고 떠난 것에 "회피한 셈"이라고 말했다. '틀린 판결'을 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중간은 간다고 생각했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박 전 부장판사가 떠난 자리에 앉게 된 박 부장판사는 재판 진행 경과가 담긴 메모를 인수인계 차원에서 전달받았다. 인계된 건 재판 현황만이 아니었다. 이 전 실장은 박 부장판사에게도 전화해 비슷한 취지를 전달했다.


검사: 이 전 실장 업무 표를 보면 2016년 5월 초, 5월 2일에 (증인에게) 전화한 것 같은데 맞습니까?


박 부장판사: 네.


(중략)


검사: (검찰 조사) 조서 내용을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증인은 "통진당 행정소송 관련해서 비례대표 의원직 상실, 즉 청구 기각 판결이 맞다고 말한 것 같다. 청구 기각이라는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취지로 말했고, 저는 언짢았다"고 말했습니다. 맞습니까?


박 부장판사: 네.


이 전 실장은 박 부장판사에게도 '청구 기각은 법원행정처의 결론'이라고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 부장판사는 이 전 실장의 전화기 너머에 법원행정처가 있다고 확신했다.


검사: 증인은 이 전 실장이 전달한 취지는 법원행정처의 뜻이라고 이해했습니까? 그렇게 받아들인 이유가 있습니까?


박 부장판사: 그게 아니면 전화할 이유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2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 처장의 속행 공판에는 박길성 전 광주지법 부장판사(현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가 증인으로 나왔다. /남용희 기자

박 부장판사의 확신에는 '전주지법 공보사태'도 한몫했다. 2015년 11월 전주지법 공보관은 역시 통진당 의원의 지위 확인 소송 판결이 선고되자, 기자들에게 참고 자료와 함께 '통진당 지방의원 행정소송 결과 보고(전주지법 11. 25. 선고)'라는 보고서를 보냈다.


해당 보고서에는 '법원행정처 공보관실-전주지법 간 공보 스탠스 공유 완료'라는 대목이 있다. '정당 해산 결정에 따른 국회의원, 지방의원 직위 상실 여부에 관한 판단 권한이 법원에 있다고 선언한 부분은 삼권분립 원칙의 진정한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헌재의 월권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적절하다'라는 부분도 있다.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개입 목적으로 조사된 내용이다.


발칵 뒤집힌 법원행정처는 '심의관 개인의 의견에 불과하다'라는 해명자료를 냈지만, 박 부장판사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 모양이다. 박 부장판사는 해명 보도를 보고도 법원행정처의 뜻이라고 생각했냐는 배석 판사의 질문에 "네"라고 짧게 답했다.


이 전 실장의 직책도 의심스러웠다. 이 전 실장이 상임위원으로 있는 양형위원회는 형사재판 양형 기준을 연구하는 곳이다. 박 부장판사의 생각으로는 민사 사건 재판장에게 전화를 걸 위치는 아니었다. 이 전 실장이 동료 판사로서 전화를 걸어 재판에 관한 의견을 전달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고 전 처장 측 변호인: 이 전 실장과 통화한 행태가, 판사들이 일반적으로 동료로부터 사건에 대한 의견을 듣기도 하고 심한 경우 개인적 부탁을 하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이 전 실장의 전화는) 거기서 벗어난 겁니까?


박 부장판사: 전제가 틀렸습니다. 그런 통화 자체가 없습니다.


변호인: 증인이 생각하기에 (이 전 실장이 전달한 내용이) 법원행정처의 생각이라고 이해한 것은, 나한테 전화할 이유가 없는 양형 실장이 전화한 것과 법원행정처 의견이 누출돼 언론에 알려진 것을 참고해서 '아, 이 사람이 이것 때문에 전화한 거구나' 이렇게 판단한 것이죠?


박 부장판사: 네. 추가하자면 양형 실장이 일선 법원에 전화하면 형사 재판 하는 곳에 전화를 걸 텐데, 내가 형사 재판장이 아니라서 양형 실장 전화를 받을 이유가 없던 것이죠.


박 부장판사는 2016년 4월 변론기일을 가진 뒤 한 달 뒤 바로 판결을 선고했다. 이 전 실장이 전한 내용과 정반대인 청구 인용 판결이었다. 박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에서 "이 전 실장의 말을 듣고 조금의 압박도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강도를 5로 하자면 2 정도의 압박이었다. 그러나 소신대로 했다"고 진술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의 다음 공판은 4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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