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박원순 사망과 '네 탓이 아니야'

기사입력 2020.07.11 00:00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일 오전 0시 20분께 숨진 채 발견 돼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러나 박 전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지 전 전직 비서 성추행 의혹이 불거졌다.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박 시장의 빈소. /임세준 기자

성추행 고소인을 향한 2차 가해 우려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충격적이라는 단어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9일 오후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됐다는 소식이 기자들 사이에 급속하게 퍼졌다. 동시에 박 시장이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까지 들렸다. 해프닝으로 끝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결과는 우리가 아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평소 알고 지내던 서울시 관계자와 통화를 했다. "아는 것 좀 있으면 알려줘요." 돌아온 대답이다. 서울시 관계자 누구도 알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으로 설마라는 직감이 엄습했다. 10일 오전 0시를 조금 넘겨 박 시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시장이자 최초 3선한 박 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박 시장은 왜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전직 비서 성추행 고소 사건 때문일까. 만약 성추행 고소 사건이 원인이라면 더 안타깝기 짝이 없다. 생전 박 시장이 여성 인권을 우선했음 볼 때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생전 인권변호사로 시민단체 활동가로 소수자를 위해 싸워온 사람이다.


특히 박 시장은 1993년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변론을 맡아 "성희롱은 유죄"라는 최초 판결을 끌어낸 인물이 아니던가. 평소 여성 인권에 정통한 그에게 본인을 둘러싼 성추행 의혹은 분명 감내하기 힘든 심적 고통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박 시장의 사망은 분명 애석한 일이지만, 그의 인생 궤적을 볼 때 죽음으로 결자해지를 해야만 했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0일 공개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유서. /배정한 기자

박 시장이 생을 마감하면서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피해자는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게 됐다. 고소인이 고소장 접수를 결정하기까지의 고충은 당사자가 아닌 누구도 알 수 없다. 더욱이 서울시장이라는 막강한 권력자를 상대로 했다는 점에서 고소인은 마지막 용기를 쥐어짜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 고소인은 본인으로 인해 박 시장이 사망에 이르렀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또, 고인의 지지자들로부터 있을 고소인을 향한 2차 가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온라인을 통해 고소인의 신상이 공개될 수도 있다. 만약 지지자나 혹은 이런 신상을 공개하려는 악의적 의도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고인이 생전 추구했던 인권 문제를 한 번 더 생각했으면 한다.


치열하게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인생을 살아온 박 시장의 죽음을 비난하고자 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언제나 떠난 사람은 말이 없고, 결국은 남은 사람이 그 짐을 고스란히 짊어질 뿐이다. '나 때문에…'는 남겨진 고소인이 짊어져야 할 짐이 되고 말았다. 고인을 애도하며 애석할지라도 죽음의 원인으로 고소인을 향해 '네 탓'이라는 2차 가해 보다는 '네 탓이 아니야'라는 용기를 주는 것이야말로 박원순의 정신이 아닐까.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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