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법원 스파이'라 불린 사나이

기사입력 2019.10.19 05:00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월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기 위해 검찰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법농단' 36회 속행공판…헌재 정보 유출한 최모 판사 법정에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장우성 기자] 헌법재판소에는 '법원 스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법원에서 헌재로 파견간 법관들이다. 주로 헌법연구관 등으로 근무한다. 2018년 기준으로는 12명 정도다.


헌재와 대법원은 오래 전부터 최고 사법기관 지위를 놓고 알력이 심하다. 파견 법관은 적진 깊숙이 침투한 척후병인 셈이다. 동시에 헌재의 논리에 포섭되기도 쉬운 '모호'한 위치다.


2015~2018년 헌법재판소에서 연구관으로 일한 최모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헌재 파견 법관 중 가장 선임이었다. 헌재에 파견 직전 동료 법관들과 양승태 대법원장, 박병대 법원행정처장을 찾아갔다. "헌재에 간 파견법관들이 열심히 일을 안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 잘 알려달라."


대법원장이 강조한 중요한 일이란 뭘까. 얼마 뒤 헌재 앞에 찾아와 파견 법관들에게 점심을 산 이규진 법원행정처 양형위원회 상임위원도 마찬가지 당부를 했다. '민감하고 중요한 정보'는 최 판사에게 전달하라고 했다.


그때부터 최 판사는 이규진 위원이 요청할 때마다 헌재에서 다루는 주요 사건의 평의 내용과 연구보고서는 물론 내부 정책, 동향 등 각종 정보를 대법원에 실어날랐다. 이 위원은 처음에는 조심스레 요구하더니 갈수록 횟수가 늘어나고 대담해졌다. 문모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 심의관은 최 판사가 보내주는 헌재 정보를 바탕으로 다양한 보고서를 써냈다. 이 위원과 문 심의관을 수신자로 따끈따끈한 정보를 첨부한 최 판사의 이메일에는 빠지지 않는 말이 있었다. '대응논리 개발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와 '언제나 그렇지만 보안에 신경써 주십시오'였다.


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대법관의 제36회 속행공판에 증인 출석한 최모 판사가 법정에서 털어놓은 이야기다.


최 판사가 넘긴 것 중에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사건에 얽힌 정보도 있었다. 이규진 위원은 헌재가 심리 중인 한일청구권협정 관련 사건을 파악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찾아보니 5건이었다. 이후에는 쟁점과 선고 예정시기 등을 알아보라고 시켰다.


이 실장 뿐 아니라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도 전화를 걸어와 연구관 보고서 등 한일청구권협정 관련 사건 정보를 요구했다. 최 판사는 한번도 같이 근무한 적이 없고 전화 통화를 해보지도 않은 임 차장이 갑자기 연락해 깜짝 놀랐다고 한다.


임종헌 차장과 이규진 위원은 왜 헌재가 심리하는 강제징용 사건 정보가 필요했을까. 당시 양승태 대법원은 일본 전범기업이 재항고한 강제징용 재사건을 진행하고 있었다. 대법원의 숙원인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청와대가 바라는 방향으로 심리를 지연하거나 판결을 뒤집는 게 당시 목표였다.


검찰은 대법원이 강제징용 사건 처리에 참고하기 위해 이런 정보를 요구한 것이냐고 신문했으나 최 판사는 "큰 관심이 없던 사건이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박병대 전 대법관이 지난해 12월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2017년 2~3월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 정보도 전달했다. 최 판사가 넘긴 정보 중에는 의견서. 준비서면, 증인·반대신문 자료를 비롯해 '스모킹건' 고영태 씨 녹취록도 포함됐다. 박 전 대통령은 3월10일 헌재 재판관 만장일치로 탄핵됐다.


재판 내내 최 판사는 자신의 처지가 여전히 당혹스러운 듯 했다. 대법원 간부 판사들은 헌재 파견 법관들을 불신했다. "검사는 헌재에 가도 검찰에 충성하는데 법관은 헌재에 가면 헌재 편이 되더라"는 것이었다. 반대로 헌재는 법원에서 온 파견 법관들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법원 스파이'라고 불렸다.


그는 "내가 잘 해서 파견 법관들이 인정받았으면 했다"며 "(헌재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하고 싶지는 않았다.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해서 했다. 하지만 왠지 꺼림칙했다"고 털어놨다. 경상도 억양이 강한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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