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는 예견된 인사참사였다. 처음부터 민심을 헤아리려 했다면 엄청난 사회적 대분열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사진은 지난 14일 사퇴한 뒤 과천 정부청사를 떠나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천=이동률 기자 |
예견된 인사참사, 처음부터 주위 얘기를 들었더라면
[더팩트 | 임영택 고전시사평론가] 조국 전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 후보로 지명한 순간부터 사퇴까지 66일 동안 우리 사회는 미증유의 홍역을 치렀으며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낭비했다. 장관 일가가 수사 대상이 되거나 기소가 되고 대규모 찬반 집회가 열리는 등 지명부터 사퇴까지 조국 사태가 모든 사안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었다.
조국 전 장관이 사퇴한 것은 만시지탄이며 후유증은 심각하다. 사퇴했다고 해서 정국이 원만하게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며 계속된 국론 분열과 여야 충돌이 예상된다. 조국 사태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연하는 인사들의 추악한 민낯을 통해 명실상부한 공정과 정의가 작동하는 체제 달성을 다시 한 번 숙제로 제시했다. 여권에서는 조국의 사퇴를 검찰이나 여론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지만 사실 검찰이나 여론은 여러 측면에서 정권의 영향력이 훨씬 많이 작용하는 영역이므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조국 사태는 예견된 인사참사였다. 처음부터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조국을 장관으로 밀어붙이는 무리수를 썼고 급기야는 민심의 맹공을 받아 사퇴까지 이르게 되었다. 눈과 귀를 활짝 열어놓고 민심을 헤아리려 했다면 조국 사태로 인한 엄청난 사회적 대분열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조국을 지명한 순간에서 사퇴까지 잘못된 의사결정의 폐해를 줄일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상황을 지나치게 안일하게 또는 낙관적으로 보다가 막바지에 몰려서야 사태를 종결하여 정권은 엄청난 상처를 입게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전지전능하지도 않고 감정의 지배를 받으므로 인식과 판단에서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잘못은 하더라도 얼마만큼 결정적 잘못의 빈도를 줄이느냐는 점이다. 판단의 피해가 엄청난 잘못을 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인문학적 소양을 쌓고 감정을 절제하여 인간과 사회를 냉철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또한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흐를 때 주변 사람의 올바른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행동의 준칙으로 삼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올바르고 좋은 의견을 제시하면 반대하거나 화를 내다가도 잘못을 깨닫고 그 의견을 따른다. 또 어떤 사람은 계속해서 자기 의견만 고집하다 잘못된 의사결정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 된다. 올바르고 좋은 의견에 대한 최초 반응이 나쁘더라도 최종적으로 그 의견을 수용하면 된다.
삼국시대 영웅 조조는 천재적 전략가였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쟁터를 누비면서 몇 번의 패배도 맛보았지만 결정적 전투는 탁월한 전략을 구사하여 매번 승리로 이끌어 삼국통일의 초석을 놓았다. 삼국시대가 위·오·촉으로 정립되어 있었지만 조조의 위나라가 판세의 주도권을 80% 정도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조조의 개인적 역량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재적 전략가였던 조조 또한 당연히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다른 지도자와 달리 훨씬 많은 양질의 의사결정을 한 것은 자신이 천재이기도 했지만 부하들의 의견을 잘 들어주는 미덕의 결과였다. 다음은 부하의 의견을 수용하는 조조의 능력을 보여주는 일화인데 조조를 생생하게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조조가 부하 두습을 관중에 주둔하게 했다. 관중의 허유가 부하들을 거느린 채 투항하지 않으려는 것은 물론이고 언사도 매우 오만불손하여 조조가 화가 나서 그부터 먼저 치려 하자 신하들 대다수가 허유를 포용하여 다른 적을 쳐야 된다고 건의했다. 조조는 칼을 무릎 위에 얹어 놓은 채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신하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습이 간하려고 하자 조조는 "나의 계책은 이미 서 있으니 다시 말하지 마라"고 했으나 두습은 간했다.
조조는 화난 얼굴로 "허유가 날 경멸했다. 어찌 그를 그냥 놔 둘 수 있겠는가?"라고 하자 두습이 "전하는 허유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조조가 "그는 평범한 놈에 불과하다"고 답하자 두습이 "무릇 현명한 사람만이 현명한 사람을 알아볼 수 있고 성인만이 성인을 알아볼 수 있으니 평범한 허유가 어찌 범상치 않은 전하를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지금 하찮기 그지없는 허유를 잡기 위해서 어찌 전하의 귀신 같은 군대를 수고롭게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자 조조는 파안대소하며 "그 말이 옳소"라고 말하고 허유를 후하게 대우하여 포용하자 즉각 조조에게 투항했다.
이 당시 조조는 왕으로 군림하며 껍데기뿐인 황제보다 더 큰 실권을 행사했으므로 자신이 내키는 대로 행동해도 거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조조는 처음에는 화가 나서 고집을 꺾지 않다가 부하의 올바른 의견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바꿨다. 이 대화를 나눈 장면에서 조조의 면면이 사진처럼 선명하게 그려진다. 조조가 부하들의 의견을 잘 들어주는 예는 비일비재한데 이 일화는 그가 감정에 치우쳐 잘못을 저지르려다가도 부하의 간언을 듣고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여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자신이 다소간 무지하거나 감정에 치우치는 인물이라도 남의 좋은 의견만 잘 받아들이면 양질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무식하고 감정만 앞세우면서도 다른 사람의 올바른 의견을 듣지 않는 사람은 최악이며 어떤 일에 종사하든 예약된 실패자이다. 우리의 정치지도자들도 묻거나 다른 사람의 올바른 의견을 잘 들어서 양질의 의사결정을 늘려나가 사회의 혼란을 줄이고 보다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했으면 한다.
순자는 "군자는 유능하면 남들이 자신에게 배우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유능하지 못하면 남들이 알려주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고 했다.
thefac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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